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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유산

후지리탑동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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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리탑동석불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1981년 04월 01일
  • 규모고려시대 추정
  • 소재지정읍시 영원면 신영리 52

상세정보

네모진 연화좌(四角 蓮華坐)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이 불상(佛像)은 현재 머리와 중대석(中臺石)이 깨어진 불완전한 불상(佛像)이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는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 지덕의 빛으로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는 부처)이다.

빈약한 손과 좁은 무릎폭, 몸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신체에 걸쳐진 법의(法衣)는 양어깨와 팔에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면 대좌(臺座)는 사각형의 지대석(地臺石)위에 놓여있는 방형(方形) 대좌(臺座)인데, 하대석(下臺石)의 하면(下面)에는 각 2구씩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꽃잎이 길쭉한 복판연화문(服鈑蓮華紋)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下臺石) 상면에 팔각(八角)의 중대(中臺) 괴임이 새겨져 있어 중대석(中臺石)은 팔각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불상(佛像)과 옷주름, 대좌(臺座)의 양식(樣式)등에서 이 불상(佛像)은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해정사지(海鼎寺址) 남방으로 산기슭에 있는 탑동 부락에 탑(塔) 불(佛)의 불적(佛蹟)이 남아 있다.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 “고부면 용흥리 탑동 50칸쯤의 산기슭(山麓)에 탑대석(塔臺石)이 있으며, 땅 속에 매몰된 2.6자(尺)의 석불 좌상(石佛座像)이 있다”고 하였다. 석탑(石塔)은 무너지고 높이 0.55m 폭 0.9m 두께 0.12m의 옥신면석(屋身面石) 두장(二枚)과 네모난 탑신석(方形 塔身石) 하나가 남아 있다.
그 탑신석(塔身石)은 높이 0.35m 폭 0.54m이다. 네 구덩이에 구석기둥(隅柱)을 세우고 윗면(上面) 중앙에는 직경 0.13m 깊이 0.08m의 2단 원형(圓形)의 사리공(舍利孔)이 뚫려 있다.

석불(石佛)은 좌상(座像)으로써 중대간석(中臺竿石)을 잃어버린 좌대위에 안치(安置)되어 있다.
불상(佛像)은 (磨滅)이 심하나, 좌대(座臺)의 조각(彫刻)은 선명하다.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서 땅 밑에 매몰되었던 것을 근래에 노출시킨 것이다.
불상(佛像)은 높이 0.96m,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무릎 너비 0.70m, 어깨너비는 0.47m인 데, 법의(法衣)는 통견의(通肩衣)이나 의습(衣褶)은 마멸(磨滅)로 분명하지 않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지거인(智擧印. 오른손 인지를 좌수로 거머쥐는 수인)을 짓고 있어,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 임이 분명하다.

대좌(臺座)는 전변(前邊) 1.15m 측변(側邊) 0.97m, 높이 0.17m의 방형지대석 위에 하대석(下臺石)이 높였고 그 위에 상대석을 얹었는데 하대석의 하반(下半)은 0.88∼0.74m 너비의 방형기단(方形基壇) 사측면에 이구(二區)씩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부는 팔엽복변(八葉複辨)의 복연(伏蓮)이 방형(方形)으로 조각되었으며 상면에는 일변으로 각출(刻出)되어 중대석(中臺石)은 팔각주형(八角柱形)임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의 높이는 0.35m이다. 상대석 역시 방형(方形)이며 하부의 八葉복변의 억연(抑蓮)을 조각하였으나, 부피는 작아서 높이 0.18m에 불과하다.
방형좌(方形座)는 전변(前邊) 0.9m, 측변(側邊) 0.77m인데 상면 뒤쪽에 0.13∼0.11m 너비에 0.77m의 방공(方孔) 2개가 있다.
이는 광배(光背)를 고정시켰던 구멍으로 결국 이 불상(佛像)은 광배와 중대석(中臺石)만 있다면 완전한 것이다.
연화문(蓮花紋)과 안상수법(眼象手法)으로 보아 고려초(高麗初) 소작(所作)으로 추정한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영원행 시내버스로 30분, 승용차로 20분

주변관광소

은선리 삼층석탑, 은선리토성, 운학리고분군, 은선리고분군, 구파백정기의사 순국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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