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문화관광

정읍관광
전추산

현대의 가장 걸출한 기악의 대가이다.
그는 단소 산조를 만들었으며, 정읍을 중심으로 한 향제 풍류의 중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윤덕

1916년 정읍군 입암면 출신으로, 김용근에게 가야금 풍류를, 정남희에게 가야금 산조를, 그리고 한갑득에게 거문고 산조를 배웠다.
정읍에서는 초산율계에 참여하여 주로 풍류객으로 활동하였으며, 후에 상경하여 산조객으로 유명해졌다. 1968년 가야금 산조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으며, 1978년 작고하였다. 정읍에는 그의 가락을 이은 사람이 없다.

신관용

신관용은 1912년 전라북도 김제군 성덕면 고현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신상용은 전남 남평에서 살다가 이사를 왔으며,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인 신관용의 아버지 신갑종은 피리와 장고의 명인이었다고 한다. 신관용은 신갑종의 다섯 아들 중 넷째였다고 한다.
신관용의 형제는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첫째 관옥은 판소리, 둘째 관봉은 판소리와 피리, 막내 관산은 장고와 판소리를 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신관용의 집안은 대대로 음악에 종사해 온 음악가 집안이었던 것 같다.

신관용은 이영채로부터 가야금 풍류와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고 한다.
이영채는 전북 김제군 만경면 사람으로 1870년경에 태어났으며, 풍류와 산조의 대가였는데, 그가 짠 가야금 산조가 바로 신관용에게 이어진 것이었다.
신관용은 매우 탁월한 연주 솜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 지방에서만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중앙에까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또한 전주, 군산, 익산, 남원, 진주 등지에서 국악원 사범으로 있었으며, 말년에는 아편에 중독되어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신관용은 1958년경 김제군 월촌면에서 타계하였다.
신관용은 강순령, 강정렬, 주선희 등의 제자를 두어, 비록 그 세력이 강하지는 못하지만 전승의 맥은 끊기지 않고 있다.

주선희

본명은 순례이며, 1926년 광주 출신이다. 열두 살 때에 담양군 창평면 지실의 박석기 집에서 김소희, 한애순과 함께 박동실로부터 「춘향가」와 「심청가」를 2년여 동안 배웠다고 한다.
32세 때 정읍에 와서 신관용으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웠으며, 47세 때에는 성금연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워 지금까지 두 바디를 연주해 왔다.
주선희는 매우 탁월한 연주가였지만, 지방에만 묻혀 있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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