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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영향

사발통문과 함께하는 동학농민혁명, 황톳길에 서린 민중의 역사, 동학농민혁명의 성지 정읍

1894년 1월 고부농민 봉기로부터 시작되어 동학농민군이 전국을 휩쓸었떤 “동학통민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채 좌절되었지만 , 한국의 근 현대사를 결정지은 역사의 일대 사전이자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 반외세의 가치를 높이 세윤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었다.

세계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는 바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가를 만드는 일이 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동학농민혁명은 올바른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했다.

동학농민군들은 인간평등의 실현, 사회비리의 척결, 외국 침략세력의 구축이라는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봉기했던 것이다.
비록 그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안으로는 갑오경장을 일으켰고, 밖으로는 또 청일(淸日)전쟁을 일어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동학농민혁명의 영향은 수천년간 이어오던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되었다는 점이요, 혁명을 좌절시킨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이후 계속되는 일제침략에 맞서는 항일 독립정신을 길러주었다.
또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왕과 관료들이 불러들인 청나라 군대와 이를 따라 들어 온 일본군은우리나라에서 청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는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의 결과 동양의 패권을 일본이 차지하여 계속적인 침략을 자행하였으며, 그것은 우리나라의 멸망까지 가져왔다.

순창 피노리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장군의 최후 모습이다. 전봉준이 체포된 것을 끝으로 농민혁명은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민족의 자주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시도는 이렇게 좌절되었고 , 이후 조선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지 못한 채 식문지로 전락해 갔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은 한국근대사의 성패가 갈리는 그 순간을 담고 있다.
이 사진에서 잡혀간 것은 전봉준이 아니라 조선의 농민 대중이다,아니 조선이다.

갑오경장은 비록 일본이 세운 정권이 추진한 개혁이지만, 여기에는 일부 문벌가의 권력 중심의 통로가 되었던 과거제도를 철폐했고, 양반과 상놈을 가리는 사회신분을 없애버렸으며, 과부의 재가를 허용했다.
이 문제들은 동학농민군이 요구하고 실현했던 내용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수천년동안 내려오던 잘못된 제도를 바꾸어 양반이나 관리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농민대중이 중심이 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세상을 이룩했던 것이다.
비록 이 제도가 일본에 대한 반발과 정치적 불안으로 완전히 실행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분명히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근대사회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나라 근대의 기점을 만들어 내었다.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민족 민중운동의 거대한 첫 발이었으며 올곧은 방향타요, 지침이 되어 왔던 셈이다.
이후 갑오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의 분기점마다 항상 자리를 함께 했다.
의병항쟁과 3.1독립운동과 4.19혁명, 그리고 5.18 광주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동학농민혁명의 숨결은 늘 살아 있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지금까지 언제나 역사의 그늘 속에 있었다.
지배층과 기득세력에 저항해 완전한 승리를 이끌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패배했다는 이유 때문에 역사는 이를 핍박하고 왜곡하고 뒤틀린 시각으로 재단해 왔다.
일제시대에는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저항세력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을 철저하게 박제화한 식민사관(植民史觀)이 기세를 부렸고, 해방 이후에도 역시 본질 자체는 호도된 채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라는 명제 아래 진보적·근대적·혁명적 성격이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거나 확대 해석되는 경향이 강했다.
1970년대 이후 역사의 자리매김을 위한 조명작업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고, 1980년대부터는 연구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의 지평은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갖고 있는 다양한 측면이 제대로 조명되기 까지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때문에 역사적 사실의 철저한 규명과 복원을 온전하게 이루어내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북한도 여기에 역사적인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 남북통일의 정신적 역사적 기저를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남북, 우리 민족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조건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황톳길 , 저골 깊게 서린 민중의 역사를 찾아 나선다.
고부들판에 나는 와서 서 있다.
당신들도 이 들판에 와서 보아라.
그러면 보리라, 저 옛적 고구려 무사 노닐던 요동 벌판 만주 시베리아 내닫던 말발굽 소리 잊어 버린 채
쾌죄죄하게 옹졸하게 골짜기에 갇혀 스스로 비하하고 스스로 멸시하여 스스로 억압하며
나 아닌 남 섬기고
대륙아닌 섬처럼 고립되어
반도속에 우겨넣은 대륙,
반도를 대륙으로 만드는 평야
도리어 황폐하게 내버리고 구박하여
억업받아 억눌림 받아 갇혀 있던 동학의 대지가 들고 일어나 해방시키고자 하였던 우리의 신하
식민의 사슬과 분단의 고리에 찢긴 이 한반도에 어떠한 들판으로 세상을 열어 놓고 싶어하는지 볼 것이다.
-박태순의 국토기행 중에서-

참고 : [동학농민혁명 100년] / 김은정 , 문경인 , 김원용 / 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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