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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주도세력

이미 그 실체를 매장당한 갑오동학농민혁명의 바른 모습을 복원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과제는 바로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되지 못한 채 농민혁명의 성격 문제, 주도·주체 세력 문제, 그것의 사회 경제적 지향 문제를 비롯한 주요 쟁점들이 여전히 논쟁점으로 남아 있는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미 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자들의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기존 연구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과학적인 해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논쟁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농민혁명을 배태시킨 당시대의 복합적인 시대상황이 정당하게 규명되어 있지 못한데다 이 역사의 실체를 복원시킬 수 있는 사료가 이미 없어지고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역사의 올바른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의 고삐를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을 맞고 있다.

역사 변혁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 동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오늘에도 변혁운동의 가장 중심점이고 실천적인 문제로 서 있다.
우리의 매장된 역사 동학농민혁명에서도 그 주체·주도세력을 규명해내는 작업이 갖는 중요성은 예외가 아니다.
사실 농민혁명의 주체·주도세력을 밝히는 작업은 동학농민혁명의 배경, 그 지향 등 역사적 역할과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여타의 주요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동학농민혁명의 주도·주체세력에 대한 기존 연구의 입장은 다양한 시각으로 제기되어 있다. 연구의 진전과 연구시각의 변천에 따라 일정하게 변화되어온 기존 연구자들의 입장은 대략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그 첫째는 잔반(殘班)주도설이다.

70년대까지 유력한 견해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잔반주도설은 북한 학자 리청원에 의해 주창되어 김상기를 비롯한 초기 연구자들을 거쳐 한우근에 와서 완성됐다.
한우근은 자신의 논문 "동학의 리더십"에서 "동학의 교주를 포함한 동학교의 접주(接主)들은 몰락한 양반 후예, 즉 잔반계층에 속하는 자들로서 이미 지체와 체모를 갖출 수 없게된지 오래됐을 뿐 아니라 그들의 처지가 평민(농민)의 그것과 다름 없이 되었던 자들이었다"고 밝혀 양반 지배계층으로부터 탈락한 잔반들이 그들과 처지가 비슷한 일반 농민들과 이해를 같이하여 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보았다.

또 다른 견해는 부농(富農)주도설이다.

주로 일본인 학자인 미촌수수, 마연정리 등에 의해 주장된 이 입장에 따르면 농민혁명 전후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볼 때 농민혁명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부르주아적 부농층에 의해서 이끌려졌다.

세 번째의 입장은 빈농(貧農)주도설이다.

신용하·조경달(趙景達) 등의 연구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빈농주도설은 대체로 조선후기 사회에서 부르조아 계층은 계급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농층은 근대사회로의 변혁주체로 등장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부농층은 혁명성을 상실하고 제국주의 세력과 결합함으로써 이들로부터 수탈당하고 억압받고 있던 빈농층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혁명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견해다.
이 입장은 기본적으로는 시각을 같이하면서도 연구자들에 따라 농민혁명과 '부농'의 관계를 상정하는 입장에 따라 또 다른 세부적인 관점으로 분류되고 있긴 하지만 오늘날 학계에서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이다.

또다른 견해는 빈농주도설을 비판하고 나선 양반주도설과 혁명적 농촌 지식인의 주도설이다.

신영우(申榮祐)에 의해 주장된 양반 주도설은 영남 북서부지역의 농민군 지도자의 출신을 사례연구한 결과로 제기한 주장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영남 북서부지방(예천, 상주 등)에서 활동한 농민군 지도자 21명중 7명이 상급 양반이었고 10명이 상급 양반 이외의 양반이었다"는 사례연구를 근거로 경상도 북서부 지방에서의 농민혁명을 주도한 계층은 동학교단에 의해 접주, 접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동학교단의 간부들이었으며 신분상으로 이들 중 다수는 양반이거나 향리층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중소지주 또는 부농층이었다고 밝혀 기존의 입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혁명적 농촌지식인 주도설(이윤갑·계명대 교수)은 혁명적 농촌지식인의 이념적 사상적 지도 아래 농민층이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시기별로 참여세력을 달리 설정하는 견해도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도자 명단조차 시기별로 각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시켜 볼 때, 시기별 참여세력을 당시의 시각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한 중요한 쟁점의 여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시각과 그들이 주목한 참여세력의 차이로 농민군은 혁명초기의 다양한 구성에서 집강소시기를 거치면서 평·천민층으로 집중되어가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처럼 농민혁명의 주도세력에 대한 견해가 각각 엇갈려 일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시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그 위치를 규정해야 하는 이원적인 사회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일원적으로 단정지으려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농민혁명의 주체·주도세력에 대한 각각의 주장은 현재 학계 연구자들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중세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전환점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적인 방법으로 근대사회를 수립하려는 변혁운동이었다는 역사적 의의에 비추어 볼 때 그 주체의 실체를 가려내는 작업은 참으로 절실한 과제이다.
그것은 농민혁명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올바로 파악하는 바탕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역사의 시점마다 그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민중운동의 실상을 밝혀내는 작업으로서의 의의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일치되지 않는 각각의 견해를 한 고리로 엮어 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모색되지 못하고 있는 한 그것은 여전히 지속되어야 할 연구와 논란의 대상으로 앉혀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러나 80년대부터 더욱 두드러져 있는 연구 작업들을 일별해 볼 때 기존 연구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과학적으로 해명되고 총체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또한 폭넓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각 주제별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는 주장들을 통일된 시각으로 모아내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시기별 연구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가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기존의 연구작업들이 사료의 한계와 각 시대가 안고 있었던 상황으로 말미암아 도식적인 연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동학농민혁명의 주도·주체세력을 규명하는 일은 결국 봉건적 위기와 근대화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비롯된 재정부담의 가중이 국가 재정의 위기를 초래하고 결국은 농민층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시대 상황하에서의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변혁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란 물음으로부터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경제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구성과 또한 신분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세력이 뿌리내리고 있던 당대의 사회상황에서 봉건적, 민족적 모순을 껴안아 감수하고 있는 진정한 민중세력을 찾아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어쩌면 역사의 한 중간에서 늘 그래왔듯이 불의에 항거하며 떨쳐 나가 올바른 현실을 이어내려 온몸으로 부딪쳤던 수많은 민중들의 신원을 회복시켜내는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의 변혁을 담당한 진정한 주체는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고통 받으며 당대를 살았는가?'를 규명하는 일이 어찌 과거의 역사에서만 절실한 일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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