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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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본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자 그 여당(餘黨)들은 다시 재거를 계획하고 비밀리에 단체를 조직했으니 바로 고부의 영학계(英學溪)이다.
그것도 고부농민봉기의 발상지인 고부 마항(馬項)에서 이루어졌다는데 더욱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영학(英學)이란 예수교(敎)를 지칭한다.
당시 마항리(馬項里 井邑市 梨坪面)에는 비밀리에 전주(全州)로부터 영국인(英國人) 선교사(宣敎師)가 주일(週日)마다 와서 주민을 모아 놓고 선교활동 하는 임시교회가 있었다.
이 임시교회에는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동학(東學)의 남은 세력들이 원근에서 몰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임시 교회는 필경 관헌의 주목대상이 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그들은 이 교회를 중심으로 영학계(英學溪)를 조직했다. 그 조직은 정읍을 비롯하여 흥덕(興德), 고창(高敞), 장성(長城), 영광(靈光), 무장(茂長), 함평(咸平)등 7개 고을 사람들로 이 가운데 수계장에 정읍 최익서(崔益瑞)와 장성 송문여(宋文汝, 四街里) 서사(書寫, 書記)에 차일용(車一用, 長城黔岩) 수전유사(收錢有司)에 함평(咸平) 김태서(金台書, 現 靈光, 森南面 里門里)였다.

최익서는 정읍 입암면(笠岩面) 만화동(萬化洞)에서 나서 갑오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관군으로부터 체포령이 내려졌던 인물로 그는 전라도 서남부 지방에서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그 수가 1천여 명을 헤아렸으며 아버지 영두(永斗)와 함께 정읍 농민봉기를 영도했다.
1898년 11월 흥덕(興德) 민란이 있은 지 몇 달 지나서 1899년 4월 18일 정읍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최익서가 거느리는 전라도 서남부 지방의 3백여 명이 정읍 입암면(笠岩面) 왕심리(旺尋里)에서 벌왜벌양(伐倭伐洋 일본과 서양의 침략을 정벌함)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세우고 일어나니 기해정읍농민 봉기이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의 보국안민을 표방한 점에서 그와 맥을 같이하는 재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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