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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호 (1855~1940)

박인호

1855(철종 6)~1940.
갑오동학농민혁명 때 호서지방 지도자이며 천도교 제 4대 대도주(大道主).
본관은 밀양. 초명은 용호(龍浩), 자는 도일(道一), 도호는 춘암(春菴). 충청남도 덕산 출신.
1883년(고종 20)에 동학에 입도, 이듬해인 1884년에는 손병희(孫秉熙)와 더불어 공주 가섭사(迦葉寺)에 들어가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종교적 수행을 지도받고, 그 뒤 예산지방에 포교, 서산지방의 박희인(朴熙寅), 德七)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 1892년에는 전라도 삼례 교조신원운동에, 1893년에는 동학교도광화문복합상소 때 활약하였다.

또한, 보은 장내리 민중시위 때에는 많은 교도를 동원, 참가하여 덕의포(德義包)라는 포명(包名)과 대접주의 임첩(任帖)을 받았다.
1894년 10월 재기포 때에 호서지방에서 박희인과 더불어 기포·덕산·예산·신리원(新里院), 그리고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근대 무기로 반격하자 패하여 분산, 도피하였다.

1900년에 동학의 경도주(敬道主)가 되어 손병희를 도와 동학재건에 힘썼고, 1904년에는 동학교도들로 조직된 진보회(進步會)를 통하여 갑진개화운동(甲辰開化運動)의 일선에 나섰으며, 1907년에는 천도교 차도주(次道主)가 되었다.

이듬해인 1908년 1월에는 천도교 제4세 대도주가 되고, 그 뒤 천도교 제3세 교조 손병희의 지도 아래 천도교 중흥에 힘써서 교세를 크게 일으켰다. 1919년에는 3·1운동으로 일본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르고, 다음해 10월에 출옥, 천도교 교부를 지도하다가 일제가 대륙침략을 감행한 이듬해인 1938년에는 멸왜기도(滅倭祈禱)를 지시한 것이 발각되어 많은 교도들이 잡힐 때 병석에서 심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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