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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명 장군

이름 준상(峻相) 자 덕명(德明) 호 용계(龍溪) 언양김씨(彦陽金氏)이니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金堤市 金山面 三鳳里)에서 출생했다.
전라도 동학의 중진 인물로 1892년 11월 1일에 있었던 교조신원(敎祖伸寃) 운동의 삼례대회(參禮大會)에 금구(金溝) 지방의 1만여 명의 교도들을 소집하여 대회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원평의 동학은 조정에서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1893년(고종 31) 3월 20일 전라감사로 제수된 김문현(金文鉉)이 조정에 들어갔을 때 전라도의 동학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이때 고종임금은
"호남에서 금구(金溝)에 동학이 가장 많이 있다고 하는데 전주(全州)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먼저 그 소굴을 소탕하여 없애라"
문현(文鉉)이 아뢰기를
"30리 가량 떨어져 금구 원평(金溝院坪)에는 과연 동학당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삼가 성교(聖敎·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금구 원평의 동학은 물론 김덕명포(金德明包)의 동학을 지칭하는 것이니 그 세력이 얼마나 떨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김덕명은 원평에 도소(都所)를 크게 설치해 놓고 공전(公錢·세금) 공곡(公穀·국고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공주(公州)패전 후 전봉준과 원평으로 후퇴하여 재거를 계획했으나 11월 25일 원평싸움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27일 태인(泰仁)싸움을 최후로 해산하고 향리로 돌아와 금산면 장흥리 안정사동(金山面長興里安靜寺洞)에서 잠거하고 있다가 1895년 1월 1일 (양 1월 25일) 태인 수성군(泰仁 守城軍)에 잡혔다.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法務衙門·法務部) 권설재판소(權說裁判所)에서 전봉준·손화중·최경선·성두환(成斗煥·忠淸道)고 함께 사형을 선도받고 교수형으로 최후를 마치니 나이 51세였다.

제 삼십 호(第 三十 號)
판결선언서(判決宣言書)
전라도(全羅道) 금구면(金溝面) 동거(洞居) 농업(農業) 평민(平民) 피고(被告) 김덕명(金德明) 년(年) 오십일(五十一)
우기자(右記者)난 김덕명(金德明)이가 금구지방(金溝地方)에서 취군성당(聚群成黨)하야 관고(官庫)의 군물(軍物)을 착탈(捉奪)라고 민간(民間)의 전곡(錢穀)을 겁략(劫掠)하야 혹(或) 관정(官庭)과 혹 촌려(村閭)에 작경자효(作梗滋擾)하야 파분우의(把分于義)가 망유기극(罔有紀極)한다 하기로 본아문재판소(本衙門裁判所)에 나교(拿交)하야 심문(審問)을 령행(零行)한 즉(則) 피고(被告)가 해지방(該地方)에서 우항정절(右項情節)을 사행(肆行)한 증빙(證憑)이 적확(的確)한지라 기소위(其所爲)는 대전회통추어조군복기마(大典會通推條御軍服騎馬)하고 작변관문자(作變官門者)를 부대시참(不待時斬)이란 명문(明文)을 조(照)하여 처죄(處罪)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이피고(以被告)에 김덕명(金德明)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 일(三月 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法務衙門權說裁判所)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회심(會審)
경성주재 일본상국령사 내전정퇴(추)(京城駐在 日本帝國領事 內田定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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