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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선 장군

이름 병석(炳碩), 초명(初名) 만석(萬碩), 자 낙필(洛弼) 경선(景(卿)善)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니 정읍시 북면 월천동(北面 月川洞)에서 출생하여 주산리(舟山里)로 옮겨 살았다.
그의 판결문은 이름을 영창(永昌)이라 하였다.
전봉준은 공초에서 3월봉기를 누구와 모의했느냐는 물음에 손화중과 최경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판결문에는 최경선을 전봉준의 모주(謀主·제일모사(第一謀士라는 뜻)) 또는 고굉(股肱·팔과 다리)이라 표현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태인 사람으로 1893년 11월 고부군민들의 사발통문(沙鉢通文) 대표로 참여하여 다음해 정월 고부농민봉기를 이끌었다.

3월 백산(白山)봉기에서 영솔장(領率將)으로서 동학농민군을 통솔했다.
5월 전주해산 후 전라도 각 군·현에는 동학농민군의 집강소(執綱所)가 설치되었는데 남원부(南原府)와 나주목(羅州牧)이 이에 응하지 않아 전주 대도소(大都所)에서는 이를 정벌(征伐)하기 위하여 남원에는 김개남을 나주에는 최경선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최경선은 동학농민군 3천을 거느리고 내려가 7월 5일 나주성(羅州城)을 공격했으나 목사 민종열(牧使·閔種烈)의 완강한 저항으로 나주성 점령에 실패했다.

9월봉기 후 일본군이 나주(羅州·영광(靈光)) 해안으로 침입한다는 설(說)이 있어 서울 진격에도 참가하지 않고 손화중과 나주에 머물고 있었다.
공주(公州)패전 후 전라도 서남부지방의 동학농민군을 나주로 집결시켜 나주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일본군이 내려오자 11월 27일 광주(光州)로 입성했으나 사태가 재기불능에 이르자 12월 1일 동학농민군을 해산했다.

최경선은 독자로 동학농민군 잔군을 이끌고 남평(南平)을 거쳐 동복(東福)으로 내려가 12월 1일 벽성리(碧城里 現 화순군 南面)에서 관군에 피체되었다.
최경선은 담양(潭陽)의 일본군에 인계되어 서울에서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1895년 3월 30일 최후를 마치니 나이 37세였다.

판결선언서(원문)(判決宣言書(原文))
전라도 태인 주산동 거 농업 평민(全羅道 泰仁 舟山洞 居 農業 平民)
피고 최영창 자 경선 년 삼십칠(被告 崔永昌 字 卿宣 年 三十七)
우기자(右記者)는 최영창(崔永昌)을 대(對)하야 형사피고사건(刑事被告事件)을 심문(審問)하여 본 즉 피고(被告)는 동학당(東學黨)이라 칭(稱)하난 비도(匪徒) 거괴(巨魁)로 개국(開國) 오백삼년(五百三年) 삼월이후(三月以後) 전라도(全羅道) 태인(泰仁) 산외면(産外面) 동곡거(東谷居) 농민(農民) 전봉준(全琫準)이 모주(謀主)가 되어 도당(徒黨)을 모화 동도고부군아(同道古阜郡衙)고 드러가서 작경(作梗)을 하고 또 그곳에서 전라감영관병(全羅監營官兵)을 항적(抗敵)하고 정읍(井邑),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 영광(靈光), 함평(咸平), 장성(長城)을 지나 동년사월이십육·칠일(同年四月二十六·七日)게 전주(全州)를 들어가 초토사(招討使) 홍재희(洪在羲)가 거나린 관군(官軍)을 항적(抗敵)할 때에 피고(被告)는 전봉준(全琫準)의 고굉(股肱)이 되어 종시기사(終始其事)에 참여(參與)할뿐더러 동년구월이후(同年九月以後) 전봉준이 일병(日兵)을 격양(擊壤)하량으로 도당(徒黨)을 숙집(嘯集)하난 중(中) 동년십이월(同年十二月) 동복(同福) 벽성(碧城)의서 수성군(守城軍)한대 잡힌거신데 그 사실(事實)은 피고(被告)와 급기동모자(及其同謀者) 전봉준, 손화중이 자복(自服)한 공초(供招)와 압수(押收)한 증거문적(證據文籍)이 분명(分明)한지라 차(此)를 법률(法律)에 조(照)하면 피고(被告)의 소위(所爲)는 대전회통형전중(大典會通刑典中)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불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文者不待時斬)이란 율(律)로 처리(處理)할 거시니라.

우(右)에 이유(理由)로써 피고(被告) 최영창(崔永昌)을 사형(死刑)에 처(處)하노라.
개국(開國) 오백사년(五百四年) 삼월이십구일(三月二十九日)
법무아문권설재판소(法務衙門權說裁判所) 선고(宣告)
법무아문(法務衙門) 대신(大臣) 서 광 절(徐光節)
협판(協辦) 이 재 정(李在正)
참의(參議) 장 박(張 博)
주사(主事) 김 기 조(金基肇)
오 용 묵(吳容默)
회심(會審)
경성주재 일본상국령사 내전정퇴(추)(京城駐在 日本帝國領事 內田定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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