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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배 (1870~1894)

이름 용배(龍培.譜名) 자 양여(陽汝)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니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金堤市鳳南面花蜂里 當時 金溝縣)에서 츨생했다.
일찍이 동학(東學)에 들어가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에 김개남(金開南)과 남원(南原)에 진출하여 이 해 6월 순천(順天)에 영호도회소(嶺湖都會所)를 설치하고 영호대접주(嶺湖大接主)가 되어 영·호남 지방을 통괄했다.

9월 봉기 후 김인배는 지리산 남쪽지방을 휩쓸었다.
이 해 8월 하동(河東)의 민보병(民保兵.官軍)이 동학농민군을 반격하고 나서자 하동접주(河東接主) 여장협(余章協)의 구원 요청을 받은 김인배는 순천, 광양지방의 동학농민군 수천명을 이끌고 하동으로 진격하여 하동부성을 점령하고 도소(都所)를 설치했다.

11월 10일에는 좌수영(左水營.麗水)으로 진격하여 덕양역(德陽驛)에서 수영군(水營軍)을 격파하고 종고산(鍾鼓山.麗水)을 점령했으나 추운 계절이어서 지탱하지 못하고 회군했다.
또 11월 16일, 11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좌수영으로 진격하여 서문(西門)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수사 김철규(金澈圭)와 일본군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12월 6일 일본군과 관군이 남하하여 순천(順天)에서 광양(光陽)으로 밀려 다음 7일 민보병(民保兵.民兵)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수접주 유하덕(首接主.劉夏德.順天)과 함께 피체되어 효수당했다.
족속 현익(顯翼)도 같이 이곳에서 전사했다.
이 밖에 90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포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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