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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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의 유래에 대하여는 안택축원설(安宅祝願說)과 군악설(軍樂說), 불교관계설(佛敎關係說) 등 세 가지 학설이 있다.

현존하는 농악의 당굿, 샘굿, 집돌이로서의 지신밟기 등이 오신(娛神)과 축귀(逐鬼) 등을 포함한 농경의례(農耕儀禮)와 안택축원적(安宅祝願的)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진(陣)풀이와 군기(軍旗)인 영기(令旗), 전립(戰笠)과 같은 것들이 군악적(軍樂的) 요소로 보인다. 그리고 사물이라든가, 고깔, 삼색띠나 무동(舞童)들의 나비춤 같은 것들이 불교적 요소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런 학설들이 나왔을 것이다.

농악의 시원(始源)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문헌적 기록은 없으나, 『三國誌(삼국지)』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을 보면 농악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기록이 있다. 馬韓常以五月 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飯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 鐸舞十月農功畢 赤復如之 (마한(馬韓)에서는 5월에 파종이 끝나면 항상 귀신에게 祭를 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그 춤은 여러 명이 한 줄을 이루어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기도 하며 손과 발을 서로 맞추는 것이었다.

절주(節奏)는 마치 중국의 탁무(鐸舞)와 비슷하였다. 10월 농사가 끝나도 그와 같이 하였다.) 그런데 이 글귀에 보인 제귀신(祭鬼神)이라 함은 무당들이 가제(可祭)한 동제(洞祭)굿과 마당밟기(지신밟기)를 연상케 하고, 군취(群聚歌舞)라 함은 신성한 놀이장에서의 신명난 춤을 말한다. 탁무(鐸舞)라 함은 지금의 농악형태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보이는데, 그 의식 즉 제천의식은 어떠한 내용이었으며, 예능적 형식은 어떠한 모양을 하였을까 하는 점이 농악의 유래를 규정 지어 주리라 보인다. 고대인들은 수렵과 농사를 짓고 생활하는 가운데 다신교적인 자연신을 섬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연이 그들의 생활을 완전히 보장해 주는 것만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폭우나 병마(病魔)로 살상과 파괴를 가져왔으므로 사람들은 거기에 보이지 않는 정령(精靈)의 존재가 숨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여기서 자연신 숭배의 관념이 생겨났고, 제의식(祭儀式)이 싹튼 것이다. 고대인들에 있어서 생명에 직접 위험을 주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것은 신비불가해의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은 악신(惡神)이 인간들에게 붙어 질병과 죽음을 가져 다 주는 것으로 믿었다. 여기에 주술과 무축풍(巫祝風)의 의식이 발생함으로써 예술이 발생한 것이다. 흔히 원시종교를 가리켜 벽사진경(酸邪進慶) 이라 하는데, 농악은 어떠한 벽사의례(酸邪儀禮)에서 싹튼 것인지 연구를 통해 밝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농악대들이 당(堂)에 가서 선신(善神), 農神(농신)과 수호신(守護神))을 맞이하여 가가호호를 순회하는 집돌이를 하며 가신(家神)을 위로하는 동시에 잡신(雜神), 망령(亡靈)과 잡귀(雜鬼), 토신(土神)을 진혼(鎭魂)시켜 마을 밖으로 물러나게 함으로써 마을의 생활공간을 청정(淸淨, 마당밟기로 淨土)하게 하고 재앙을 면하며 복과 풍년을 맞이하려는 의식에서 농악이 싹튼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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