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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소금

  • 가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우리나라 고유의 가로 부는 적 중 가장 큰 것을 대금, 중간 크기를 중금이라 하고, 제일 작은 것을 소금이라 한다.
  • 신라시대에는 소금이 대금. 중금과 함께 삼죽으로 불렸다. 신라의 소금은 중국의 당적과 함께 고려시대를 통하여 전해왔고, 조선조 성종 24년 (1493)의 <악학궤범>에도 나타난다.
  • <악학궤범> 에는 소금의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없이 소금과 대금이 악기의 제도에 있어서 같다고만 하였으므로 당시의 대금과 같이 취공1, 청공1, 지공6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러나 소금은 그와 흡사한 음역 및 음색을 지녔던 당적에 의하여 차츰 밀려난 것 같다. 이미 성종시대에도 <악학궤범> 의 속악진설도설에 의하면 소금은 당시의 종묘영녕전 헌가에만 편성되고 있는데 반하여, 당적은 모든 속악진설에 언제나 편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악학궤범> 이후에 당적은 문헌에 계속 나타나지만, 소금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조 후기의 각종 의궤와 1930년대에 이왕직아악부에서 편찬된 <아악생교과철> 의 악기편에도 당적만 나올 뿐, 소금은 빠져 있다.
    즉, 소금은 <악학궤범>이후 차츰 사용되지 않은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왕직 아악부시대에도 당적은 그 음역과 음정이 당악계의 악곡을 연주하는 데만 적합했을 뿐 향악계의 악곡에는 맞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 가장 곤란했던 것은 당적의 최저음이 당악계의 황종(즉 향악의 C에 해당함)이므로 향악계 음악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임종(즉)을 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왕직 아악부시대의 악사들은 당적의 제 1공을 임시로 막아서 사용하지 않는 반면에 원래 불용공인 제 7공을 이용하여 임종을 내는 등 편법을 썼으며, 때로는 연주자들이 향악계의 음역과 음정에 맞게 6지공의 횡적을 당적과 별도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
    이 향악계의 음악에 적합한 횡적은 1956년 3월 부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교육용으로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현행과 같이 7지공으로 보완되면서 소금이라는 명칭도 부활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실체는 예전 소금과도 다르고 당적과도 다르다. 그 뒤 소금의 음색이 당적과 흡사하고 그 음역은 넓어서 당적의 음역까지 다 포함하기 때문에 당적으로 연주할 악곡까지도 소금으로 연주하게 되어, 최근에는 오히려 당적이 쓰이지 않는 경향이다.
  • 그러나 당악계의 악곡을 소금으로 연주할 경우, 음역은 문제가 없으나 음정은 특별히 조절해야 한다. 현행 소금은 대금과 달리 청공은 없고 지공이 6.7 개 가 있으며, 제 7공 다음에 사용하지 않는 허공이 하나 하단에 있어 모두 9공이다.
    지공은 지름 약 0.4cm의 원형이며, 취구는 가로 약 1.6cm, 세로 약 1.4cm의 타원형으로 되었다. 취구에서 제1공까지의 거리는 약11cm이며, 지공과 지공사이의 간격은 제 1공에서 제 2공까지는 약 1.9cm이고 뒤로 갈수록 약 0.1cm씩 더 넓어지는 것이 통례이다. 소금의 재료로는 황죽도 무방하지만 대금과 같이 쌍골죽이 더욱 좋다.
    전체 길이 및 굵기는 천연 대나무로 만드는 만큼 일정하지 않으나, 길이 40cm, 굵기 지름 2.2cm정도이며, 하단의 내경이 약 1.4cm인데 상단, 즉 취구쪽으로 갈수록 약간 좁아진다.
  • 소금은 민속음악이나 민간정악에서는 쓰이지 않고 궁정악에서만 사용된다.
    특히, <정읍>(일명 수제천). <동동>. <삼현영산회상>. <자진한잎>.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등 관악 합주곡에서 중요시 되고, 관현합주곡인 <여민락>.<평조회상>등에도 편성될 수 있다. 소금은 관악기 중 가장 높고 맑은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소리가 도드라져 들리기 때문에 다른 관악기들이 복수로 편성되는 합주에도 흔히 단수로 편성된다.
  • 전통적으로 소금가락의 주된 흐름은 대금과 흡사하지만 장식음이 훨씬 풍부하고 화려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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