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李舜臣) : 조선중기의 명장, 1545(仁宗1)~1598(宣祖31)

서울 건천동(乾川洞, 현재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 씨(草溪 邊 氏)의 셋째 아들로 출생. 본관(本貫)은 덕수(德水)이고, 자(字)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32세에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첫 관직에 올라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 선전관, 비변사를 거쳐 1589년(宣祖22) 45세에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정읍(井邑) 현감이 되어 선정으로 칭송받는다. 이후 진도군수 등을 지냈으며, 같은 해 정3품 당상인 절충장군(折衝將軍)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옥포대첩, 사천포 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품계가 올라갔고 한산도대첩에서 공을 세워 정헌대부에 올랐다.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도 승리로 이끌고 1593년(宣祖26) 남해안 일대의 일본 수군을 완전히 일소한 뒤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장문포해전 후 계략에 빠져 백의종군한 이순신은 원균이 전사한 이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은 빼앗긴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1598년(宣祖31) 2월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과 혼전을 벌이다가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1604년(宣祖37) 권율, 원균과 함께 선무(宣武) 1등 공신이 되고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에 추봉된 데 이어 좌의정이 추증되었다. 1643년 인조는 그에게 '충무' 시호를 내려 충무공(忠武公)이 되었다. 1659년 효종 때 남해에 그를 기려 충무공 이순신의 비(碑)를 세웠으며, 1688년(숙종 14년)에는 명량대첩비가 건립되었고 1705년 현충사가 건립되었다. 1793년 정조는 정1품 의정부 영의정을 가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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