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기(白貞其) : 독립운동가, 1896~1934

부안군 남하면 내진리(扶安郡 南下面 內振里. 現 東津面)출생. 본관(本貫)은 수원(水原), 호(號)는 구파(鷗波), 사순(士順)의 아들. 12세 되던 1897년 8월 외가(外家)를 따라 고부군 북부면 흔랑리(古阜郡 欣浪里. 現 井邑市 永元面)로 이사

19세 때 서울로 올라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과 전단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각지를 몰래 다니며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중국베이징으로 망명, 일본 군사시설 파괴에 전력하였으며, 1924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고 도쿄에 갔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설립에 관여했으며 상하이에서 재중국 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는데 참가하여, 조선 대표로 출석하였다고 우관문존년보에 전해진다. 폐결핵으로 1929년부터 약 1년간 요양생활을 하여 완치되었다.

1932년 상하이에서 자유혁명자연맹을 조직하여 흑색공포단(BTP)으로 개칭하고, 조직을 강화하여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 당시에 구파 의사도 동일한 시도를 준비했었으나 실패하였다. 1933년3월 상하이 훙커우(虹口)에서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암살하려고 모의하다가 육삼정(六三亭)에서 체포.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백정기의사는 이시하야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옥사(獄死)하였다.

1946년 박열, 이강훈 등 아나키스트계 독립 운동가들이 3의사 유골 수습을 촉구하여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유골을 일본으로부터 회수하여 7월 6일 국민장을 실시하였고, 현재 효창원 3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953년 10월 향리인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에 구파백정기 의사순국기념비(鷗派白貞基義士殉國記念碑)를 세웠고 1996년 10월 사단법인 구파 백정기 의사기념사업회(社團法人 鷗波白貞基 義士紀念事業會)가 발족하여 다음해 의사고택지(古宅地) 근지(近地)인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井邑市 永元面 隱仙里 928번지) 5,939평에 공비(工費) 40여억 원의 사당 의열사(義烈祠)를 세워 영정을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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