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풍물(농악)은 지역에 따라 음악요소, 무용요소, 연희요소 및 내용이 약간씩 달라 대개는 웃다리풍물(농악), 영동풍물(농악), 호남풍물(농악), 영남풍물(농악)로 대별한다. 그 중에서도 호남풍물(농악)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으며, 호남풍물(농악)은 다시 서해안 평야지대의 우도풍물(농악)과 산간지역의 좌도풍물(농악)로 나누어진다.우리 민족의 소박한 대중 민속음악인 풍물(농악)은 전통 문화예술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포괄적인 집단 행위예술이며, 가장 원초적인 악기와 가락으로 흥과 신명을 돋우는 우리 나라 고유의 전통 종합예술이라 하겠다.정읍풍물(농악)이 발달한 시기를 찾아보면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에 깊이 관여했던 증산교(교주 강증산)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음이 경전에 기록되어 있고, 1920년대에는 보천교(교주 차경석.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서 풍물(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지정 우대하여 풍물(농악)기능인들을 초청 대대적인 공연을 함으로써 풍물(농악)을 육성 발전시켰다. 이즈음부터 호남우도풍물의 판이 갖춰지게 되었고 그때의 명인들이 정읍을 중심으로 호남 서해안 평야지대(정읍, 고창, 부안, 김제, 익산, 군산, 영광, 함평, 나주, 목포, 광주)에 정읍우도풍물(농악)을 이끌었던 명인들을 찾아보면
1.쇠
- 김도삼, 김강래, 박성근, 신두옥, 전이섭, 전사종, 박남식, 현판쇠
2.장구
- 김홍집, 이봉문, 신기성, 이명식, 전사섭, 이정범, 김병섭, 이동원, 추계동
3.채상
- 정오동, 백남윤, 한판옥, 주기환, 홍유봉
4.고깔소고
- 권재기, 유종권, 김종수 선생 등으로 1940년대말부터 1970년대까지 전국에 그 명성을 떨쳐 기예(技藝)를 따를 자들이 없었다
호남 우도풍물(농악)의 중심지역으로써 그 찬란했던 정읍풍물(농악)의 명예를 되살리고자 1980년대초부터 정읍의 많은 풍물(농악) 관계인들이 우도풍물(농악)에 대한 꾸준한 발굴과 연구, 풍물(농악)단 창단을 통하여 유지화, 김종수 선생의 지도하에 우도풍물(농악)의 전수 및 후진 양성, 호남우도풍물(농악) 전수관 건립 등으로 호남우도 정읍풍물(농악)이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