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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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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김명관 고택(井邑 金命寬 古宅)

  • 종목국가민속문화유산
  • 지정일1971년 05월 26일
  • 시대1784년 건립
  • 소재지정읍시 산외면 공동길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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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이 가옥은 김동수씨의 육대조(六代祖)인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하산(蒼霞山)을 배경(背景)으로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上流)인 맑은 하천(河川)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세운 주택용(住宅用) 건물(建物)이다.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다시 사랑채의 안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左右 對稱)을 이루며, 좌우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特異)한 평면(平面)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祠堂)이 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部材)를 사용했는데 이는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지은 중류이상(中流以上)의 주택건물에 보이는 일반적 특징이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建立者)의 독창성(獨創性)을 엿보게 한다.
후세(後世)에 보수(補修)하거나 개조(改造)되지 않고 거의 원형(原形)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택과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주위에는 여덟 채의 호지(護持: 노비의 집)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채만 남아 있다.

이 집에서 누대(累代)를 살아 오면서 재산을 누리고 살아온 이름 있는 터(基)로 점을 쳐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목이 되는 풍수설(風水說)의 터이기도 하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니 좋은 집터라 하여 이익이 생겨지는(生利) 집이라하여 집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곳이기도 하다.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터전에 동서(東西)로 65m, 남북(南北)이 73m의 장방형 담으로 둘려 있고 주 건물(主 建物)은 동서면(東西面)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개울을 건너가면 대문(大門)앞에 큰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졸아들어 버렸다.
문간(門間棟)채는 길게 설치되어 있으나, 쓰임에는 두 가지로(兩分)되어 있다.
대문(大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마구간(馬廐間)이 있고 좌측에 방, 마루, 또 방이 있고 거기에서 꺾이면서 북쪽에 있는 칸에 방과 부엌을 한칸씩 두고, 이어 약간 간격을 둔 뒤에 바깥 남자들이 쓰는 변소(外厠)를 세웠다.

이 하나의 담으로 둘러쳐 막은 곳(一廓)에 한 곳을 사이벽(間墻)을 쌓고 동편에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동쪽 정원에 사랑채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고, 그 앞에 대문간채(大門間棟)에서 이어진 고간(庫間)이 일곱칸 계속 되다가 ㄱ자로 꺾이고 북쪽으로 가면서 부엌과 방 두 칸이 더 있다.
사랑채에는 정면으로 다섯칸, 옆면으로 세칸의 一자형(字形) 평면인데 높은 기둥에 세운 안에 들이고 그 앞뒤로 툇간을 두었다.
방은 두 칸과 뒷방 한 칸이며 부엌과 안창고(內庫)가 있는 외에는 전부가 마루로 된 시원한 양청(凉廳)이 되어 있다.
이 사랑채에선 전퇴(前退) 서단간(西端間)에 횃대처럼 한가닥만 기둥 사이에 건너질러 난간처럼 꾸민 구조가 주목되고 있다. 난간의 발달과정 등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급하는 학문적인 자료가 거기에 있다.

중문간채(中門間棟)가 사랑채 뒤편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변소(厠間), 허간(虛間), 고간(庫間), 내외벽이 있는 두 칸의 중문(中門), 이어 헛간과 고간이 계속되다가 아홉간(間)채에서 꺾이어 북쪽으로 부엌과 방이 두 칸 이어진다.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ㄷ자형의 안채가 있다. 몸채의 가운데 여섯칸이 대청 (大廳)이며 세칸이 두불작이다. 그 좌우에 방이 각각 있고 이어 꺾인 날개부분에 부엌이 만들어져 있다.
안채의 서쪽에 별당(別堂)이 한 채 있어 역시 남향이다. 一자형인데 정면 다섯칸, 옆면 칸반이 되는 규모이다.
역시 가운데에 대청(大廳)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으며 서쪽 끝에 부엌 한칸이 만들어져 있다.

별채의 남쪽에 부속건물이 하나 더 있고 안채의 동북쪽에 따로 이룬 가묘(家廟)가 있다. 특히 사랑채에는 팔각 지붕에 네모난 기둥인 방주(方柱)를 사용했으며 주위로는 잘 다듬은 화강암의 길게 다듬어 만든 돌인 장대석(長帶石)을 둘러 놓았다.
이 건물은 균형미가 넘쳐 있으며 처마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이루는 건축미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나타내주고 있어 조선조(朝鮮朝) 사랑채 건물로서는 전국에서도 빼어난 건물이라 하겠다.
특히 기둥은 다른 건물과는 달리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의 기초인 주초(柱礎)도 밑면보다 상부가 좁아지도록 깎아낸 원형 화강석을 사용하였다.

이 집 주위에 여덟채의 호지집(護持家)과 집에 관한 풍수설 등도 특이하려니와 행랑채(行廊棟) 전면에 파놓은 연못과 이 집을 세울 때 주위에 느티나무를 심어서 마을에 땅 값을 지불하는 등 이 이야기로 미루어 집 자체 뿐 아니라 주위의 조경(造景)에 대해서도 건축주(建築主)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규모

* 안 채 : 정면 오간, 측면 간반, 중문간채(동), 정면 구간, 측면 일간

* 사랑채 : 정면 오간, 측면 삼간

* 별 당 : 정면 오간, 측면 간반

수량-오동(일곽)

1. 바깥사랑채 2. 사랑채 3. 안행랑채 4. 안 채 5. 안사랑채 6. 사 당 7. 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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