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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 순교 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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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 순교 모비

  • 소재지정읍시 칠보면 행단1길 51-72

상세정보

행단리(杏壇里)에서 구절치(九節峙)로 올라가는 도로 좌측에 있는 21기의 군묘(群墓)가 있다.
지금은 연고자가 이장을 하여가 수기(基)에 불과하다.
1907년(隆熙 1年 丁未) 겨울 당시 임실(任實) 순창(淳昌) 등지의 시천교(侍天敎: 敎主 李容九)) 교도들이 화호(禾湖)에서 시천교지도 인물들을 만나고 돌아가다가 이곳 행단리 객점(客店: 여인숙)에서 투숙했다.
때마침 동곡(東谷: 山外面)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들이 의병(義兵)으로 오인하고 이를 포위하고 총포를 난사하여 교도 30∼40명중 겨우 몇 명이 생명을 구했을 뿐 21명이 학살당하였다, 일본측은 폭도로 오해 했다고 변명하였으며 한·일(韓·日)양국 정부에서는 조위금 수백원을 하사하고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비석을 세워 조위하였으니 그게 바로 지금의 묘(墓)이다.
당시 이용구(李容九)는 동학교(東學敎)를 수습하고 친일파(親日派)인 송병준(宋秉畯)에 합류한후 시천교를 친일의 지방조직(地方組織)을 삼았으니 이 때 시천교는 친일종교 단체로 되었던 것이다.
강증산(姜甑山)은 대순전경(大巡典徑)에서 이들을 일진회원(一進會員)이라 규정하고 참변을 예언하였다.
이들은 순창(淳昌), 임실(任實), 태인(泰仁)의 교도들이다.
창건거사 교도사 이인상찬(蒼崗居士 敎導師 李寅相撰)「호남 정읍 칠보산 향단 21인 순교 묘비명(湖南 井邑 七寶山 杏壇二十一人 殉敎 墓碑銘)이란 석비(石碑)가 있으니 성명은 다음과 같다.
布德師 : 許龍進
信道師 : 房鎭敎
勸道師 : 林在春, 林東奎, 林永俊, 張文燁, 林敬燮, 張達燁, 徐完山, 晉進玉, 金奇祚, 柳益賢, 梁良玉, 崔錫九, 田永杓, 金奇弘, 金保賢, 金順烈, 鄭 滿, 崔護鳳, 鄭仁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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