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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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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 시대1786년 개축. 1948~1987년 중건
  • 소재지정읍시 소성면 애당모촌길 9

상세정보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사우(祠宇), 강당(講堂) 인일정 영당(引逸亭 影堂) 등 세 구역(區域)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우(祠宇)는 1956년(丙申)에 중건(重建)한 것으로 그때는 사당(祠堂)으로 주벽(主壁)에 김남식(金南式)을 모시고 그 좌우(左右)에 김이성(金履成)과 김성은(金性殷)을 배향(配享) 하였다.
앞면은 세칸(三間), 옆면도 세칸(三間)으로 단층이며, 나무로 만든 기와 집으로 겹쳐마 이며, 맞배지붕에다 이익공 5량가 구조이다.
강당(講堂)인 옥산정사(玉山精舍)는 1786년인 정조(正祖) 10년(丙午)에 개축(改築)한 것 으로 1987년(丁卯)에 복원(復元)되었다.

이 옥산정사는 대청(大廳) 좌우에 온돌방(溫突房)을 들인 전형적인 강당형식을 보여주는 데 사방에 퇴를 두른 점이 특이하며, 비교적 원형을 잘 지키고 있다.
앞면이 여섯칸(六間), 옆면은 세칸(三間)인 단층이고 나무로 만든 기와집이며, 겹처마에 몰익공 5량가 구조이다.

인일정(引逸亭) 영당(影堂)은 김성은(金性殷)의 영당으로 앞면이 세칸(三間)이며 옆면이 두칸(二間)의 단층으로 된 나무 기와집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에 초익공 3량가 구조이다.
삼강문(三綱門)은 1828년인 순조(純祖) 28년(戊子)에 그때 고부군수(古阜郡守)가 세웠으 니, 19세기 초반에 건립하였으나, 그동안 퇴락(頹落)하여 1948년에 중건 되였으니, 광복이 후에 된 것이며 중층(重層: 二層, 樓閣型式)으로 나무로 만든 기와집으로 앞면은 세칸(三間)이며 옆면은 두칸(二間)으로 된 홑처마 팔작지붕에 이익공 3량가 구조로 되어있다.

옥산서원의 세워진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했으나, 이곳에는 1800년대에 만들어진 조선 지도(朝鮮地圖) 등 많은 고문서(古文書)가 소장(所藏)되어 있으며, 이 서원(書院)의 배치구 도(配置構圖)는 잘 짜여진 것은 아니나, 서편 앞쪽에 인일정(引逸亭) 선생의 영당(影堂)과 삼강문(三綱門)이 별도의 영역(領域)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옥산서원은 전라도(全羅道) 유생(儒生)의 상소문원본(上疏文原本), 간찰(簡札), 영정(影幀), 1800년대에 만든 조선지도(朝鮮地圖) 및 세계지도(世界地圖) 등 다수의 고서(古書)가 소장(所藏) 되어 있다.

제사(祭祀) 받는 사람(享祀人物) - 玉山祠로 始作이 되었다.

김남식(金南式)

조선 중기(中期)에 창의(倡義)한 선비이다.
광산인(光山人)이다. 자(字)는 군언(君彦)이며, 호(號)는 의촌(義村)이다.
1617년인 광해(光海) 9년(丁巳) 12월에 지평(持平) 여성(汝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독재(愼獨齋) 김 집(金 集)의 문하생(門下生)으로 1636년인 인조(仁祖) 14년(丙子)에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청주(淸州)에서 적병(敵兵)을 격파하고 삼전도 (三田渡)의 비보를 듣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가 청(淸)의 년호(年號)를 쓰지 않으니, 세칭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일컬었다.
1681년인 숙종(肅宗) 7년(辛酉)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뒤에 이조(吏曹) 참의(參議)에 증직(贈職) 하였다.
순조(純祖) 23년인 1823년(癸酉)에 명정(命旌)이 내렸다.

김이성(金履成)

조선 중기(中期)의 효자(孝子)이다.
광산인(光山人)이며, 자(字)는 성보(聖甫)이다.
호(號)는 시은(市隱)이다.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효자로 이름을 얻었으며 의촌(義村)의 아들이다.

김성은(金性殷)

광산인(光山人)으로 자(字)는 성연(聖淵)이며, 호(號)는 인일정(引逸亭)으로 의촌(義村) 의 현손(玄孫)이다.
1765년에 태어나서 황윤석(黃胤錫), 이직보(李直輔), 김정묵(金正默) 등의 문하(門下)에 서 공부했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父母)의 상(喪)을 당하여 시묘(侍墓) 하였다.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 임진창의록(壬辰倡義錄), 성리변론(性理辯論), 태극선설(太極鮮設) 등을 저술하였다.

고종(高宗) 때 우승지(右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의 증직(贈職)이 내리고 임진창 의비(壬辰倡義碑)를 장성(長城) 오산사(鰲山祠)에 세웠다.

옥산사 정비문(玉山祠 庭碑文)

사인과 군자가 마음을 세우고 행실을 바로잡아 천지와 성현을 짝을 하여 이해와 화복을 초월한 후에 천하 만세에 찬사가 있으니, 우리 인월정 김선생은 천품이 고상하여 일찍이 학 문에 뜻을 두고 황이재 이중주의 문하에 학문을 연마하여 두 선생이 바른 선비로 허락하였 다.

중주선생은 성스럽고 공경함이 날로더하고 정성스러워 신령을 감동시켜 충성과 효도와 절 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을 옥황상제가 인일한다는 글을 현판으로 걸어주면서 권장하고 또 김 미호, 김과제, 송강제, 이강산, 제현을 두루 뵈어면 학식을 넓이며 취향을 바르고 옳고 그 름을 분별하며 사도와 정도를 확장하고 선행과 악행을 분별함을 본령으로 하고 효도와 공경 과 충성과 의리를 대령으로 하며 성실, 정의, 조짐, 존덕으로 조예삼아 남방의 높은 선비가 되었다.

일찍 동국 문헌과 해동삼강록을 편집하면서 간사함을 내치고 어짐을 보존하는 것을 분명 히 하며, 털끝만큼도 변호를 허용치 아니하였다.
소인배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면서도 의젓이 후회하지 아니하니, 참다운 군자요 곧은 선비 로다.
운석 조상공 인영이 칭찬하고 간제 전 선생 우가 또 그 어짐과 효도와 절개를 두루 기렸 으니, 선생의 선생됨을 알겠도다.
유림이 모아서 의논하고 일어서 사우를 세우고 풍속의 교화를 이루었으니, 나 또한 그 중 한사람 이었다.

유림들이 나에게 비문기를 명하여 사양하지 못하고 기하였다.
선생의 이름은 성은 이요. 자는 성연이며, 광산 김씨 노계경희의 후손이다.
이 사우의 건축역사에 정운종 김형락 이서범의 공이 컸으며, 고을 유림의 협력이 아니였 으면, 이 영광과 행복이 없을 것이다.

순묘후 갑진 구 월 일.
후 학 청송 심 우 택 기
본손 재 룡 서

옥산서원 정비문(玉山書院 庭碑文)

기상조화의 더 하고 덜 함과 인간 정의의 서로호응 함이 천지의 역수요. 자연의 형세이 다.
옥산서원은 인일정 김선생의 사당이다.
지난 정미년 가을에 김의촌 김시은 두 선생을 유림의 합의로 올려 향사 하였으니, 바로 인일정의 고조와 증조로 삼세 조선이 한 사우에 제사하게 되었으니, 위대하지 않은가.
의촌선생이 주위에 하고 시은선생이 동위에 하고 인일정 선생이 서위에하여 행적과 나이 를 헤아려 함이다.

인일정의 선대행적은 구비에 자상하고 의촌 선생의 이름은 남식인데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우애하였으며, 부모의 명령으로 신독제 김선생에게 집지하고 학문을 배웠다. 탁월한 재주로 독실이 배워 심오한 이치를 깨다르니, 선생이 지극히 칭찬하며 권장하였다.

오랑케 난리로 임금이 피난에 선생이 따라 다니는 밤길에 여러번 적의 습격을 받자 분발 하여 오랑케를 섬멸하였으며, 군사와 군량을 모으며, 의병을 일으키려 할 때에 강화의 소식 을 듣고 통곡하며, 잠적하여 수양하면서 후학을 계도하였다.
부모상에 시묘하며 예법을 다 하였으며, 충과 효가 탁월하여 이조참 의를 증직하였다.

시은 선생의 이름은 리성인데 의촌공의 아들이다. 천성의 효도로 혼정 신성하여 따스하고 서늘한 절차를 게을리하지 않고, 부친의 심한병에 절지수혈하여 이틀을 연명하게 하고 상을 당함에 물 한모금을 마시지 아니하니, 늙으신 어머니가 마시기를 억지로 하였다. 시묘하며 읍곡한 여가에 예문을 감독하고 상복을 벗지 아니하였다.

부친의 유명으로 송우암 선생 문하에 수학하여 유도 학행을 몸소 따르다.
성. 정. 격. 치의 학문에 잠심하고 조.존. 성. 찰의 공부에 노력하니 선생이 크게 칭찬하 였다.
노력하니 선생이 크게 칭찬하였다.
기사년의 국변을 당하여 국모가 무참되고, 우암 선생이 사사 되니, 세상의 뜻을 잃고 태 성의 운곡에 집을 얽어 문을 잠구고 안정하며 예문을 강마하니 와 배우는 제자가 많았다.
도덕의 선비로 천거되어 승정원 승지로 증직하고, 정문을 세우며, 조세로 면제하였다.
두 선생의 충절 효도 학문은 나약한 사람이 뜻을 세우고, 완악한 사람이 염직하게 되는 백세의 사범이 되었다.

세월이 오래가면 사적이 묻혀 없어질까 두려워 재장 이병훈의 주장으로 본손 유사 재선이 와 여러 선비의 노력으로 기적비를 세우다.

공자 탄항 二천九백二十七 년 병진 청명절
월성 이 상 준 찬
장성 서 후 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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