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읍시 문화관광

정읍관광

|정읍관광|문화유적|유물/유적

유물/유적

영은사지-지금의 내장사 영은사지-지금의 내장사

이전 이미지 다음 이미지

영은사지-지금의 내장사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3호
  • 시대삼국시대 백제 무왕 37년(636년) 창건, 1958년 중건
  • 소재지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상세정보

백제(百濟) 무왕 37년(武王 37年 丙申)인 서기 636년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오십동(五十棟)의 큰 절(大刹)을 세웠다(建立).
그 뒤 고려(高麗)때 숙종 3년(肅宗. 戊寅)인 서기 1098년에 행안선사(幸安禪師)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것으로 고쳐 이룩하였다고(重 : 중창) 전(傳)하여 왔다.
조선조(朝鮮朝)에서 명종(明宗. 丁卯) 22년인 1567년에 희묵대사(希默大師)가 법당(法堂) 과 요사(寮舍: 절에 있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를 지었다고 전(傳)하고 있으나, 중종 34년 (中宗. 乙亥)인 1539년에 정부(政府)의 소각령(燒却令)에 의하여 폐(廢)했다는 기록 (記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인조(仁祖. 乙卯) 17년인 1639년에 부용대사(芙容大師)가 사우(寺宇)를 짓고 불상(佛像) 을 도금(鍍金)했으며, 정조(正祖. 乙亥) 3년인 1779년에 영운대사(映雲大師)가 대웅전 십왕 전(十王殿)을 짓고, 요사(寮舍)를 새로 지었다. 근세(近世)에는 백학명선사(白鶴鳴禪師)가 사세(寺勢)를 크게 중흥(中興)시키며 어느 때인가 영은사(靈隱寺)를 내장사(內藏寺)로 호칭 (呼稱)하게 되었다.
근래에 와서는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대웅전(大雄殿)은 중수(重修)하고, 명부전(冥府殿)과 요사(寮舍)를 신축하였으나, 6.25 사변 때인 1951년 1월 25일에 방화(放火)로 전부 타 버리고, 1957년에 요사(寮舍), 1958년에는 대웅전을 다시 지었다(지금의 石柱 大雄殿의 普天敎 普化門이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공원(國立公園) 개발계획(開發計劃)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一柱門), 1975년에 명부전(冥府殿), 1978년 정혜루(定慧樓)를 다시 짓고(復元), 1078년에는 사천왕문 (四天王門)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印度)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 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참고할 것은 성임(成任)의 정혜루기(定慧樓記)에 의하면 영은사(靈隱寺)는 고려(高麗)말 무렵에 지엄선사(智嚴禪師)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영은사(靈隱寺)의 개산 연혁(開山沿革)을 밝히는 데는 더 많은 고증자료의 연구가 요청된다.

영은사(靈隱寺)에는 문루(門樓)인 정혜루(定慧樓)가 있으니 한창 절의 세력(勢力)이 가장 번창할 때 세워진 것으로 세조(世祖.丙戌) 12년인 1466년에 시작하여 다음해에 다 지은(竣工) 세칸 루각(樓閣)이다.
그 규모나 제작이 장려무비(壯麗無比)하다고, 유명한 정혜루기(定慧樓記)가 극찬하고 있 다.

定慧樓記를 지은 成任은, 字는 重卿이고, 號는 逸齊이며 昌寧人이다. 143년인 世祖 9년에서 2년도안 全羅觀察使를 지냈고, 벼슬이 右參贊, 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詩文에 能하고 글씨를 잘 써서 유명한 學者이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내장행 시내버스로 30분, 승용차로 20분
주변관광소
내장산권

목록

  • 관리부서동학문화재과/문화재정책팀
  • 연락처063-539-6911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