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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모의탑 동학혁명모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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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모의탑

  • 주소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 문의처063-534-1967
  • 관리기관주산마을
  • 휴무일연중무휴
  • 입장료없음

상세정보

사발통문은 고부에서의 봉기를 민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규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료이다.만약에 이것이 진본이라면 고부의 첫 봉기부터 혁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사발통문을 놓고 진본이다, 아니다 하면서 학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한 실정이다.

 

사발통문이 작성된 곳으로 알려진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은 사발통문에도 나와 있듯이 원래는 고부 서부면 죽산마을이었다. 순수 우리말 지명은 '대뫼'였으나 일제 때 이 마을의 정기를 말살할 목적으로 배처럼 떠돌아다니라는 뜻에서 주산으로 개명한 것이다.

 

사발통문이 발견된 것은 4201년(1968) 12월 4일로 신중리 주산마을에 사는 송기태(송국섭씨의 아들)씨 집에서였다. 통문에는 전봉준을 포함하여 20명의 서명자 명단이 주모자를 알 수 없게끔 사발을 엎어놓은 둥근 원 주위에 한자와 함께 한글로 쓰여 있다.통문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발견 당시 최현식 선생(현 정읍문화원장)은 사발통문을 김상기(金庠基)박사에게 감정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감정결과 서명자의 필적이 동일인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지질과 먹색으로 보거나 발견경위로 보나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사발통문을 진본으로 보고 고부봉기는 우발적, 촉발적이 아닌 계획적인 것으로 혁명운동의 기점이었다고 보는 견해와 이와는 반대로 3월 봉기까지의 고부민란 과정을 철종조의 진주민란 이래 발생하고 있던 일반민란과 동기나 형태에 있어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하면서 여전히 민란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신용하 교수의 근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발통문이 당시의 원본도 아니고 고부 민란에 대한 회고록의 일부를 필사해 놓은 데 불과한 것이라고 하면서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일어난 일들이 동시에 기록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발통문이 작성된 송두호의 집 안방은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 전창혁이 장두(狀頭/소장을 올린 우두머리)로 나섰다가 몰매를 맞고 돌아와 치료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임두영씨가 살고 있는데 앞집은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송대화 씨의 집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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