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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숫대를 구김없이
작성자 관리자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는 조선조 23대 순조 때의 학자이며 시인이며 정치가다.
호를 강산, 척재( 齋), 석모산인(席帽山人)이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덕과 재주가 남달리 뛰어났고 무재(武才)또한 드날렸다 한다. 전라도 관찰사, 대사헌, 우의정, 판중추부사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그 문장이 뛰어났다고 하니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한시(漢詩)의 4대가(四大家)라 일컬어진다.
강산(薑山)은 한때 태인(泰仁)고을의 순찰사(巡察使)로 임명되었다. 나이 16세, 소년의 나이로 순찰사의 막중한 임무를 맡았었다고 한다. 순찰사로 부임하게 되자 낯선 지방이라서 직무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하관(下官)들에게 조소(嘲笑)를 많이 받게 되었다. 나이 많은 하관들은 강산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순찰사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때마다 늙은 하관들의 비웃음이 계속되었다. 모임이 있어 지시를 듣고 돌아서는 하관들은 자기들끼리 다시 모여 흉을 보고 '어린 녀석'이라 하며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강산은 이 눈치를 알아 차렸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건방진 행위를 고쳐줄 것인가 하고 고심했다. 그러나 특별한 묘안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날이 갈수록 강산은 부하들에게 무시당함이 괴로웠다. 고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루는 많은 하관을 거느리고 조회(朝會)를 하게 되었다. 그날의 훈시가 내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모임의 뒤에서 몇 명의 하관들은 훈시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으며 소곤대고 있었다. 강산은 화가 치밀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 조용히 하시오. 지금 당장 저 수수밭에 들어가 수숫대 하나씩을 뽑아 오도록 하시오.』
추상같은 엄명이 내려졌다.

하관들은 어찌된 영문이냐고 서로들 물으면서 밭에 들어가 수숫대를 하나씩을 뽑아 가지고 돌아왔다. 강산은 손수 일어나 돌아보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수숫대를 가지고 왔는지를 확인했다. 한 사람도 감히 어길 수가 없었다. 이어 강산의 명령은 다시 떨어졌다.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긴 수숫대를 조금도 구김 없이 각자의 옷소매에 넣도록 하시오. 넣을 때 수숫대가 부러지거나 굽어지면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니 이점 명심하도록 하시오.』
많은 하관들은 벌벌 떨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여기저기서 수군수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키보다 큰 수숫대를 구기지 않고 어떻게 옷소매에 속에 넣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서로들 수숫대를 옷소매에 넣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강산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보시오. 이 수숫대는 일년도 채 자라지 못한 곡식입니다. 일년도 못 자란 수숫대를 여러분은 한 사람도 자기 옷소매 속에 넣지를 못했습니다. 일년도 못 자란 수숫대 하나를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십육년을 자라온 이서구를 무시하는 불손한 태도는 어디서 배운 것이오? 누가 대답을 해 보시오?』 하고 다그쳐 물으니 주위는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그 지혜 앞에 누가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강산을 인정하고 받드는 하관들은 날로 늘어갔으며 얼마 뒤엔 그야말로 흠모하고 존경하는 하관들뿐이었다.
강산 또한 항상 반성 속에 덕을 베풀면서 관리자로서 자기 임무를 다하여 훗날 갖은 칭송 속에 높이 평가된 관직(官職)의 인물이 되었다 한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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