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읍시 문화관광

정읍관광

|정읍관광|전통문화|전설/설화

전설/설화

로딩중입니다...
제목 왕솔의 가지를 자르고
작성자 관리자

정읍시 상평동 모촌(上平洞 茅村)에 이르면 동네 입구에 큰 정자나무를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노거수(老巨樹)로 학자들은 수령(樹齡)을 8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정자나무(둘레 : 7m 높이 : 28m)는 느티나무인데 그 많은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잎의 청청함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무병한 가운데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노거수를 보면 대개는 한쪽의 나뭇가지가 말라죽고 잎이 빨리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나무는 그렇지가 않다.
작고 둥글둥글하며 좁쌀 같은 열매가 잎 사이에 매달려 있다가 10월이면 익는다. 그러나 이 나무의 밑동 부분에는 풍상의 상처를 견뎌낸 자국이 선명하다. 나무에 깊은 골이 10연군데 패여 있는 것이다.
북쪽으로는 0.5m 가량의 썩은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수령을 자랑이라도 하듯 고색(古色)이 자연의 운치 그대로다.

6·25 직후까지만 해도 이 나무 밑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매년 당산제를 지냈다.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흔히 있는 풍속과 마찬가지로 동네 사람들 수십 명이 모여 집집마다 곡식과 음식값을 거둔후 제수(祭需)를 장만했다. 그리하여 풍년과 동네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는 것이었다.
한번은 6·25 직후의 일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정월 보름날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미리 선정한 제관(祭官)들로 하여금 술을 올리도록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한 가운데 당산제를 올렸다. 그런데 이 마을의 풍습은 당산제를 한 번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을 지내는 것이다. 한 번은 당산나무 아래서 지내고 바로 이어서 또 한번은 동네 뒤편에 왕솔 몇 나무가 있는데 그 곳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두 번째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의 제사까지 무사히 치른 뒤였다. 그때 제사를 지낸 사람 중에 최공서(崔共西)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제사를 지낸 이튿날 나무를 하기 위하여 산에 갔었다. 땔감의 나무를 많이 하기 위하여 지게를 지고 낫과 톱까지도 준비해 가지고 갔었다. 최씨는 산에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나무를 모았으나 양이 너무도 적었다. 그때만 해도 땔감을 전부 산에서 긁어다가 생활하는 시대에서 나무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최씨는 많은 시간을 부지런히 일해 땔감을 모았지만 한 짐이 채되지 못했다. 적은 나무를 해 가지고 집에 들어가기도 미안한 일이라서 큰 나뭇가지나 몇 개 잘라 가지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리 준비했던 톱을 가지고 제사를 지냈던 왕솔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원체 큰 소나무라서 가지 몇 개 자르면 훌륭한 땔감이 됨직 하였다. 최씨는 드디어 톱을 들고 왕솔나무의 큰 가지 몇 개를 잘라 내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모아 끌고 지게 있는 곳까지 옮기던 중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동네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부지런하고 인성이 착했던 최씨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은 필연코 당산신(神)의 노여움 때문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누구도 당산나무나 왕솔의 나뭇가지 하나 손을 데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최씨가 이렇게 불행하게 죽자 그의 아들들은 그후 당산제부터 참여를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지금도 정정한 당산나무와 푸른 왕솔은 옛날의 숱한 비화(秘話)를 간직한 채 그 연륜만을 더해가고 있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목록

  • 관리부서문화예술과/문화예술팀
  • 연락처063-539-5171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