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한 공주가 있었는데 학식도 높고 미모도 출중하여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용모와 높은 인격까지도 먼 옛날의 이야기다.
정읍시 산내면 허궁실(山內面 許弓室)의 허씨(許氏) 문중에 허장군(許將軍)이라 하는 분이 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기골이 장대하였다.
어려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 때에도 항상 활기차고 씩씩하였으며 그 용맹은 친구들 사이에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부모의 교육을 잘 받은 허장군은 남아로서 장래 국중의 큰 인물이 되어 나라의 간성이 되겠다는 결의로 꽉 차 있었다.
그의 인품이나 행동이 타인의 모범이 될 만하였고 특히 무예(武藝)에 뛰어 났으니 남자다운 기상이 펄펄 넘쳤다.
그대는 장래의 희망이 무엇인가? 하고 주위 사람들이 물어오면 그는 서슴지 않고
『이 나라의 제일 가는 장군이 되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끝내곤 했다.
새벽이면 먼동이 트기전에 일어나 허장군은 칼쓰는 법이며 활쏘는 법을 손수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자기의 성공을 기도로써 기원했다.
이러기를 수 년 하는 동안에 허장군의 무예 실력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필적할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였다.
그럴수록 허장군의 무예 수련은 더 깊숙이 연마되었고 그의 바램은 피끓는 젊음 속에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잘 때에도 항상 칼과 활을 옆에 놓고서야 잠이 들었으니 그의 무예에 관한 심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예를 닦는 동안 세월은 흘러 허장군도 청장년이 되었다.
갈망하던 자기의 무예도 깊이 있게 닦아져 자신도 만족함을 알고 기쁨과 안도의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는 장금산(長錦山) 기슭에서 칼쓰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있는데 별안간 말 한 필이 자기에게 다가왔다.
그 말은, 옆에 깊은 늪(沼)이 있는데 그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허장군은 깜짝 놀랐다. 탄력 있고 용맹스럽고 미끈한 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장군은 놀라운 가운데에도 어찌 반가운지 천하를 얻는 기분이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을 쓰다듬어 주었다. 말은 순수하게 허장군의 말에 곧 순응해 주었다.
허장군의 생각은 이러했다.
'아, 정말 고마운 일이다. 저 깊은 늪 속에 사는 용왕님이 나를 도와서 저렇게 훌륭한 말을 보내 준 것이다. 나는 나라를 이끄는 큰 장군이 되어야겠다.'라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물 속에서 말을 얻었다하여 그 말을 용마(龍馬)라 불렀다.
용마를 얻은 허장군은 하늘을 날고 땅을 주름잡을 것 같았다.
허장군의 이름은 어려서 본명은 아니었으나 이 용마를 얻은 뒤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부쳐준 이름이었다.
아침저녁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용마와 더불어 생활을 하는 허장군은 세상에 부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용마는 아무리 달려도 지칠 줄을 몰랐고, 주인의 명령엔 절대 복종이요 영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용마에게 어떤 어려운 일을 시켜도 용마는 그 임무를 척척 완수하고 달렸다.
용마는 문자 그대로 용마요 명마(名馬)요 준마(駿馬) 그것이었다.
하루는 용마에게 허장군의 불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정읍시 칠보면 복호(伏虎)부락 뒷산에 올라 용마에게 임무를 준 것이다.
허장군은 용마에게 『저기 멀리 보이는 옻밭골(井邑市 瓮東面 山城里) 날등머리(산봉우리)에 내가 활을 쏠 것이니 그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그 화살을 물고 돌아 오라.』 하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용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장군의 활이 당겨지는 순간 용마는 화살 방향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호랑이보다 빨랐다는 용마의 뒷모습….
허장군을 등에 태우고 화살을 향해 달렸던 용마는 옻밭골 날등머리에 당도하여 하늘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허장군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천하의 하나뿐인 명마가 이런 화살 하나 받지 못하다니….
내 너를 더불어 무술을 신묘(神妙)한 경지까지 이끌어 이 나라의 동량이 되려 했거늘 이제는 다 틀렸구나.
하면서 단칼에 용마의 목을 내리쳤다.
용미의 핏빛이 천지에 번뜩할 때, 좀전 쏘았던 화살은 그때서야 내려와 용마의 머리에 내리 박히는 것이었다.
이 엄숙하고 장엄한 순간 허장군은 '아차, 늦었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용마의 목을 벤 것은 나의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었구나.
용마는 아무 잘못이 없이 자기 임무 수행 중이었구나.
나는 얼마나 경망한 잘 못을 저질렀는가? 나는 용마 앞에 아무 할 말이 없도다.
나도 함께 죽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리라'하고 그는 자기의 칼로 자결(自決)하고 말았다.
옻밭골의 한 산기슭에서 천하를 주름잡으려던 허장군도 갔고, 용마도 갔으니 다 전설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세상 무상, 인생 무상이라 할까?
세상 사람들은 용마와 허장군이 죽으면서 흘린 피로 뒤덮인 옻밭골 날등을 '피등머리'라고 불러오고 있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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