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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룡허풍(五龍噓風) 속에 광명
작성자 관리자

종교를 가진 분은 증산교(甑山敎)라는 말을 들어 알 것이다.
이 증산교를 만든 사람이 바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이다.
그의 호는 증산(甑山), 자(字)는 사옥(士玉)이다. 1971년 음력 9월 19일 전북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古阜郡 畓內面 西山里, 현재 井邑市 梨坪面 斗地里) 그의 외가집에서 태어나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優德面 客望里, 현재 井邑市 德川里 新月里)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뛰어났고 신기(神技)가 있었으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할 때도 남달리 뛰어 났다.
그의 얼굴 생김새 하나 하나가 부처님처럼 원만 관후하여 양미간에는 '佛'자 표시가 선연했으며 왼손바닥에는 '壬'자 오른손바닥에는 '戊'자가 새겨져 있었다.
증산이 자라온 마을에는 유명한 두승산(斗升山)이 있는데 이 일대에서는 고창의 방장산(方丈山), 부안(扶安)의 변산(邊山)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두승산에는 상재봉 망재봉 시루봉의 세 봉우리가 있는데 '증산'이란 바로 시루봉의 한자식 표기라 한다.
그는 나이 14세때 하도 가난하여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집을 뛰쳐나와 이곳 저곳을 방황했으며 때로는 품팔이 막노동을 했으며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하기도 했으니 어려서부터 인생의 쓴맛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사는 형편이 조금은 풀렸을 때 고향에 돌아오니 나이는 17살인데 막연했다.
별수없이 외가에 머물면서 두승산에 올라 사색과 명상을 하며 공부했다.
특히 시루봉의 끌어당기는 힘을 입어 학업에 정진 할 수 있었으며 원대한 남아의 기상을 품을 수 있었다.
신기한 일화 한가지를 들면은,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에는 천하장사 말을 들었다 한다.
한번은 법당의 기둥을 손으로 잡아 당겨 한자쯤 늘리니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돌절구통을 가볍게 들어 머리 위로 올리기도 했다니 드문 힘의 소유자였다.
21살이 되어 장가를 들어야겠는데 마땅한 혼처가 없었다.
다행이 인연을 찾아 아내를 맞는데 신부는 한쪽 발이 절름거리고 얼굴에는 흠집이 있었으며 성격도 원만하지 못한 신부였다 한다.
제자들은 그의 혼례를 보고 '이렇듯 못나고 버림받은 여인에 순종하시어 부부가 되심은 운명의 멍에에 묶이어 흐느끼는 만 여인의 가슴속에 하느님의 사랑의 온유함을 주시기 위함이다.' 라고 평했다. 이렇게 21세의 나이에 결혼은 되었으나 원체 가난하여 처가살이를 아니할 수 없었다.
처가살이를 하면서 훈장 노릇을 했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24세의 나이로 고부에서 동학군에 합류하여 남원, 전주, 예산, 진잠을 거쳐 청주까지 갔었으나 이곳에서 별안간 복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는 체험을 얻게 되었다.
27세가 되었을 때 충청, 경기, 강원, 경상, 평안 각지를 3년 동안이나 두루 순례하며 산하와 민중의 생활 속에서 대도(大道)의 꿈을 쌓고 있었다.
그후 다시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꽉 붙잡았다.
다 떨치고 집안 살림이나 하자는 아내의 간청을 즉시 물리쳤다.
곧장 두승산 시루봉에 모신 할머니 산소에 성묘하러 갔다가 또다시 두승산이 끌어 당기는 강렬한 느낌을 체험함으로써 그는 산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이 당시의 기록을 보면 '겁액의 환난 속에서 몸부림 치는 창생을 생각하시며 잠못이루고 때로는 시루봉 밑에서 공부하시다가 산밑 샘터 너머에서 가끔 흐느껴 우시도다'라고 되어 있다.
30세(1900년)되던 여름날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전주 모악산(母岳山)을 찾았다.
모악산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기도하고 구도(求道)하고 있었다.
구도한지 아흐레가 되던 7월 5일 갑자기 큰비가 쏟아지고 다섯마리의 용이 심한 폭풍우를 불어내는 조화로운 바람 속(五龍噓風)에서 활연히 광명과 혜식(慧識)이 열리며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아 인간의 근본인 탐욕과 성냄과 음란과 어리석음을 극복한 절대정적의 경지에 들어섰으니 바로 성도(成道)에 이른 것이다.
(上通天文 下察地理 中達仁義).

도를 이룬 후 증산은 신화영통(神化靈通)하여 천지운도(天地運度)의 윤회로 미래의 만사를 예측하는 식견을 가지고, 도술조화(道術造化)하고 둔갑장신(遁甲藏身)하고 후천선계(後天仙界)를 개척할 수 있는 조화력을 얻었다 한다.
증산은 후천선경(後天仙境)건설을 목적으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한 사람이다.
천지공사란 말세의 운도(運度)를 뜯어 고치기 위하여 과거의 모든 이념, 이법, 질서를 개혁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조의 권능자인 구천상재(九天上宰)가 아니면 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권능자가 바로 증산이라는 것이다.
증산은 자신이 구천상재로서 인간 세상에 강하한 몸으로 삼계(三界)의 대권(大權)을 주재하며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여 무궁한 선경(仙境)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재겁(災劫)에 쌓인 신명(神明)과 민중을 건지러 한다 하면서 천지공사를 하였다 한다.
증산이 세상을 뜨게 되자 증산의 제2부인인 고씨(高氏)부인, 훗날 차천자(車天子)라 불리웠던 증산의 제자 차경석(車京石), 이치복(李致福 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교단(敎團)을 형성했으니 이가 선도교(仙道敎)(일명 太乙敎)이다.
신기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1911년 9월 19일 증산 탄신 기념치성(致誠)을 하던 중 고씨부인이 졸도하여 정신을 잃었다.
졸도에서 깨어난 고씨부인은 이상하게도 말과 행동이 증산과 비슷하여져 버렸다 한다.
신도들도 참으로 신기하다 하여 크게 놀랐다고 전한다.
천지공사? 알아 볼수록 묘하고 흥미 진진하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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