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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마바위 애화(哀話)
작성자 관리자

정읍시(井邑市)에서 덕천(德川)으로가는 시내 버스를 타고 20여분 달리다가 두지(만종) 마을에서 내려 서쪽으로 1km 쯤 걸어 올라가면 망제동 천곡(望帝洞 泉谷)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옛부터 물이 하도 맑고 깨끗하여 천곡(샘실, 새암실)이라 했다 한다.
이 천곡 마을에서 망제봉 산허리를 바라보면 깎아지른 듯한 바위 아래 자리한 '치마바위'를 볼 수 있다.
바위의 모양이 여자의 치마를 둘러놓은 듯하여 치마바위라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그 치마바위의 전설이 흥미를 끌어 준다.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로부터 시작된다.
망제봉 밑에 어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형편은 가난하지만 비교적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부부였다. 낮에는 산채를 뜯어다가 끼니를 잇기도 하고,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가 팔아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감에 따라 이 행복한 부부한테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졌다.
그것은 남편의 술주정이었다. 남편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
하루도 술 없이는 못산다고 큰 소리를 하는데 그 술버릇이 아주 못되었다.
술만 취해 집에 돌아오면 투정을 하고 아내를 때렸다.
남편은 매일 나무를 지고 시장에 나가 팔아 그 돈으로 술집에 들러 기생과 함께 종일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에만 오면은 아내에게 견디기 어려운 행패를 부리며 술주정은 계속되었다.

맑은 술을 먹고서 그 행동이 탁하다면 술먹을 자격이 없다 했거늘….
술을 좋아 하기로 유명한 하지장(賀知章)은 '취안(醉眼)이 몽롱해서 우물 속에 빠져도 능히 잠을 자리라' 하지 않았던가? 취하고 취해도 술주정 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 이 친구(남편) 술만 좋아했지 술의 멋은 몰랐던 모양이다.
남편의 술주정이 심할수록 가정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아내는 술버릇을 고쳐 남들처럼 행복하게 잘 살아 보자고 사정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남편의 술주정은 고칠 수가 없었다. 어떤 약초를 먹으면 몸에 술이 받지 않아 술을 못 마시게 된다기에 그런 약을 수없이 구해 먹여 보았으나, 역시 쓸데없는 일이었다.
점을 쳐 남편 몰래 눈물을 흘리며 천지신명께 빌어도 보았지만 남편의 술버릇은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기를 몇 년….
부인은 생활고와 남편의 술주정에 지쳐 있었다. 만사가 싫어졌고 남편도 싫어졌다.
끝내는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죽여서라도 남편의 술주정을 고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날도 남편을 기다렸으나 쉽게 돌아오질 않았다.
밤 늦게서야 술이 곤드레만드레 되어 가지고 집을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야 오세요? 나무는 잘 팔았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어서 들어가요.』 부인은 남편의 손을 잡고 방에 들어가 밥상을 내 놓았다.
『야, 이년아, 이게 뭐야 밥상이 이게 뭐냔 말이야. 귀한 남편을 이 따위로 대접하는 것 어디서 배웠어? 흥, 건방진 년…, 나, 오늘 기분 좋기에 한 잔 먹었다. 어디, 술 한잔 따라 봐라….』 부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부인은 식사가 끝나자 남편을 유혹했다.
『여보, 제 말 좀 들어봐요. 제가 어제 밤 좋은 꿈을 꾸었어요. 보통 좋은 꿈이 아니었어요.?br>? 『무슨 꿈인데…』
『참으로 이상하고 좋은 꿈이었어요. 제가 산길을 가는데 별안간 하늘이 무너지면서 두갈래로 딱 갈라지는 꿈이었어요. 우리 저 산봉우리 높은 봉에 올라 하느님께 빌어요. 그러면, 아마 우리들한테 좋은 복, 많은 돈을 내려 줄 거예요.』
아내가 꿈을 꾼 것이 사실이었다.
그 꿈은 아주 상서롭지 못한 꿈임을 아내는 느끼고 있었다. 하늘이 갈라졌으니 자기와 남편과 사별(死別)하는 꿈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동요가 없었다. '이런 꿈을 나에게 준 것은 필연코 천지신명의 도움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이끌고 가장 높은 절벽 위에 올랐다. 아내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기고 착잡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얼른 자기 치마를 벗었다.
벗은 치마로 남편의 얼굴과 몸을 감싸는 즉시 남편의 몸을 잡아 아래로 밀어 버렸다. 남편은 비명에 죽었다. 남편이 치마를 쓰고 떨어지면서 바위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이른바 '치마바위'다. 그 모양이 치마를 둘러놓은 듯하여 사람들은 치마바위라 불렀다 한다.
남편을 죽음 속에 몰아 넣은 부인은 눈물로써 나날을 보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남편 생각이었다. 후회와 반성과 참회의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밤이면 치마바위 밑에 가서 남편한테 용서를 빌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또한 제삿날과 명절이 돌아 올 때마다 평소 남편이 좋아했던 술을 빚어 치마바위 아래서 명복을 빌며 제사를 올렸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부인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밤이면 남편의 잠자리를 옆에 해 두고서야 잠을 잤으며 일생을 참회하는 가운데 소복(素服)을 입고 남은 생애를 보냈다 한다.
부인이 죽은 뒤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치마바위 아래 와서 빌며 기도하는 부녀자들이 많았다 한다.
남편의 행실이 부정하거나 술주정이 심한 남편을 가진 부인들이 이 바위 아래 와서 좋은 남편이 되어주십사하고 빌면 남편의 행실이 바르게 되고 주벽이 고쳐지며 좋은 남편이 되었다 한다.
' 치마바위' 그대 말이 없다.
왜? 말이 없는가? 침묵이 그리도 좋던가? 세상을 채울 수 있는 오직 그 한 사람,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을 때 아내의 세상은 얼마나 공허했을까?
수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치마바위의 전설을 더듬고 있노라니, 남편을 잃고 몸부림치던 한 여인의 장송곡(葬送曲)이 푸른 산골짜기를 메아리 치는 듯하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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