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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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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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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

  • 소재지정읍시 입암면 천원리

상세정보

전라남도와 경계(境界)를 이룬 갈재(蘆嶺), 동방(東方) 약 4㎞ 지점인 입암산(笠岩山: 654.8m)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계곡을 감은 세장(細長)한 포곡(包谷)산성으로 천연의 요새다. 남문이 위치하는 수구(水口)의 표고는 약 450m이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에 「입암산석성 주위 2,920보(笠岩山石城 周圍 二千九百二十步) 내유계수 동하석갈(內有溪水 冬夏石渴)」이라 하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고부고적(古阜古蹟)에는 「입암산 고성(笠岩山古城) 석축주 12,028척(石築周 一萬二千二十八尺) 사고중관(四高中寬) 내유일계(內有一溪)」라 하였다.
왕조실록(王朝實錄) 태종(太宗) 10년(1410年) 조(條)에 도고(度高), 전라·청주(全羅·淸州)의 요지산성(要地山城)을 수축(修築)케 하였는데 그중에는 남원 문용산성(南原 蚊龍山城) 담양 금성산성(潭陽 金星山城) 등과 함께 정읍 입암산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선조(宣祖) 26년 12월 비변사(備邊司)의 명(命)으로 전라감사(全羅監司)가 수축(修築)을 하였으며 그 후 효종(孝宗) 4년 숙종(肅宗) 2년 등 개축(改築)을 되풀이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장성입암산성(長城笠岩山城) 재북 40리(在北 四十里) 석축(石築) 주동변 1,300여파(周東邊 一千三百餘把) 숙종 2년 우퇴축 95파(肅宗 2年 又退築 95把) 고 10양척(高 10兩尺) 치첩 1,375(雉堞 一千三百七十五) 포루 4, 유2문(砲樓 四, 有二門) 3암문 내유계 1구폐(三暗門 內有溪 一舊廢) 선조조수축(宣祖朝修築) 효종 4년 개축(孝宗 四年 改築) 축제제수처 9, 천 14(築除儲水處 九, 泉 十四)라 하였다.
여지승람 장성지에는 「재부북 40리(在府北 四十里) 고 10이척(高 十而尺) 주 4,139척(周 四千一百三十九尺) 치첩 3,339(雉堞 三千三百三十九) 옹성 32(擁城 三十二), 호지 10(濠池 十) 정 17(井 十七)이라 하였고 「별장(무종: 3품)(別將(武從: 3品)) 군관 2(軍官 2), 승장 1(僧將 一), 화장 1(化將 一), 이 1(吏 一), 지인 2(知印 二), 사령 5(使令 五) 군병속읍장성(軍兵屬邑長城) 고창, 흥덕, 정읍, 태인(高敞, 興德, 井邑, 泰仁)이라고 다시 기록되어 있다.
산성의 지세(地勢)가 마조(馬槽)와 같고 성중(城中)이 감추어져 있으나 성위에 가서 시계가 트여있어 갈재의 관문(關門)을 막을 수 있는요충이라고 하였다.
이 산성은 주로 북방의 정읍(井邑) 태인(泰仁) 등 4읍(邑)을 속읍(屬邑)으로 하였으니 강욕(姜浴)은 일단 유사시 거민(居民)과 너무 떨어져 있어 효용가치(效用價値)가 적은 것을 지적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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