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유래

본래 정읍현(井邑縣) 군내면(郡內面)으로 행정구역 개편 때에, 정읍군(井邑郡) 정읍면(井邑面), 시기리(市基里) 수첨리(水砧里) 광교리(光橋里) 서중리(西中里) 미동리(米洞里) 중사리(中舍里) 종산리(鐘山里. 東面) 일부로 편성되었다. 1981년 7월 1일 정주시(井州市)가 되어 동(洞)을 신설하는데, 시기리(市基里)를 1, 2, 3동(洞)으로 나누고, 정읍천의 북쪽을 1, 2동으로 하고, 남쪽의 초산(楚山) 아양(阿洋. 峨洋) 남산(南山)의 세 개 동(洞)을 시기3동으로 하였다. 1, 2동의 경계는 광주(光州)로 나가는 옛날 국도(國道)의 동편을 시기1동, 서편을 시기2동으로 하였었다. 시기1동에 속하였던 구역은, 수첨동(水砧洞) 광교동(光橋洞)이고, 8·15광복후 주민의 증가로 평화동(平和洞) 남교동(南橋洞) 영동(榮洞)으로 나누어졌다. 시(市)가 되든 해에 시기2동을 신설하여 시기리의 국도변의 서편, 정읍천의 북편구역으로 시기 2동으로 편성하였으니, 청수동(淸水洞) 태평동(太平洞) 신흥동(新興洞) 대흥동(大興洞) 구역이다. 이 시기2동 지역은 강변의 사력(沙礫)이 많은 지대로, 일제 시(日帝時)에는 한 때 전라북도(全羅北道) 임업묘포장(林業苗圃場)이 있었으며, 광복후(光復後)에는 얼마동안 공설운동장(公設運動場)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곳에 배영중학교(培英中學校)가 설립되었으며, 1994년에 학교가 흑암동(黑岩洞. 玄岩洞)으로 옮기자, 지금은 그 자리에 삼화그린아파트가 들어섰다. 한때 이곳은 정읍의 공장지대(工場地帶)로, 일정시에는 배영중학교 자리에 한지(韓紙)공장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직물(織物), 피혁(皮革), 전분(澱粉) 등 가내공업(家內工業)이 활기를 띄웠던 때도 있었다. 1998년 10월 30일에 정읍시에서 단행했던, 작은 동(洞) 폐합으로 시기1동과 시기2동이 통합하여 시기동(市基洞)으로 합하고, 주사무소(主事務所)를 구(舊) 시기2동 사무소로 하였다. 시기동의 이름은 정읍의 시장(市場)이 자리 잡고 있어 장터의 한자로 표시한 것이 시기(市基)이며, 이 시장은 1920년경 정읍천 제방(堤防)이 만들어진 뒤였다.

  • 1) 광교(光橋) 마을
  • 2) 평화(平和) 마을
  • 3) 남교(南橋) 마을
  • 4) 영동(榮洞) 마을
  • 5) 청수(淸水) 마을
  • 6) 태평(太平) 마을
  • 7) 신흥(新興) 마을
  • 8) 대흥(大興)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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