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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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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리 고분군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8호
  • 시대삼국시대
  • 소재지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54

상세정보

고분군(古墳群)은 세기(三基)의 봉분(封墳)이 일렬로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봉분의 유실(流失)이 심하여 높이 2m, 직경 14m 정도의 원형 고총(圓形 古塚)으로 당초의 높이는 4m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비록 도굴(盜掘)되고 파괴되었지만 수혈식(竪穴式) 석실(石室)의 고총(古塚) 고분(古墳)으로 백제 전기(前期)에 속하며 이 지방에서만 알려진 특유의 것이다.
1970년대에 전주박물관(館長 全榮來)의 파괴분(破壞墳) 정리 조사시, 유물편(遺物片)들이 수습된 바 있었는데 일부 유물들은 일본(日本) 천황릉(天皇陵)의 배총(陪 )에서 출토된 유물과 같은 유형(類型)의 것이 있어 백제 문화의 일본 전파(傳播)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천태산(天台山) 서쪽 구릉(丘陵) 지대는 탑립(塔立)부락 뒷길로 조금 올라가는 쪽으로 그 곳에 세기(三基)의 봉분(封墳)이 있다.
남동(南東)에서 서북(西北)으로 길게 약 330。 방향으로 일렬로 서있는데, 남쪽으로부터 A,B,C로 이름을 붙여 본다.

A호 분묘(墳墓)

지금의 높이는 약 2.67m이고, 직경은 약 16m의 원형고총(圓形高塚)이나 토사유세 (土沙流洗)가 심하여 당초는 훨씬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석실(石室)은 봉토지표하(封土地表下) 22m 지점에서 바닥이 드러났는데 벽석(壁石)의 일부만 남아 있다.
석실(石室)은 정동서(正東西)로 긴 장방형으로 현실(玄室) 너비는 길이 1.70m, 폭은 0.95m이다.
내부는 도굴(盜掘)되어 유물(遺物)은 없다.

B호 분묘(墳墓)

직경 13.5m, 높이는 20m에 불과하다.
심히 유세(流洗: 씻긴 것)되었다.
당초는 A호와 같았던 것이다. 봉토(封土)의 석실(石室)은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

C호 분묘(墳墓)

가장 북단(北端)의 높은 곳에 있는데, 세 개의 무덤(三基) 가운데 주분(主墳)의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이것 역시 도굴(盜掘)과 토사유세(流洗)로, 높이 2m, 직경 13.7m 에 불과하다. 봉토(封土)에서 지하 1m 지점에 황회토(黃灰土)로 다진 현실(玄室) 바닥이 나타났다.
석실(石室)은 정남북(正南北)으로 긴 방향으로 그 길이가 2.9m,폭 1.37m로써 서쪽벽(西壁)은 할석(割石)으로 쌓았으며 바닥에는 편평(扁平)한 냇돌을 깔았다.
유물은 모두 도굴(盜掘)되었으나 남아 있는 것으로는 금도은제교구 (金途銀製敎具), 철제(鐵製) 칼집, 끝장식, 철지은장금도(鐵地銀張金 塗)의 용문투조과판(龍文透彫誇板) 등이 나왔다.
과판(誇板)은 일본(日本)의 『칠관(七觀)』 분묘 등의 출토(出土)의 예(例)와 수법(手法), 규격(規格) 등이 같으나 한국에서는 처음 나온 것으로 한일 고대문화교류(韓日 古代文化交流)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대(年代)는 오세기(五世紀) 후반기(後半期)로 이 지방 백제전기(百濟前期) 고분(古墳)으로써 첫 예(例)이며 이는 고사부리(古沙夫里)의 고분군(古墳群)으로 보인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영원행 시내버스로 30분, 승용차로 20분

주변관광소

전봉준선생고택, 말목장터와감나무, 은선리삼층석탑, 후지리탑동석불, 지사리고분군 고분군 군 고부관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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