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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崔益鉉)과 둔헌 임병찬(林秉瓚)이 주도하여 1906년 무성서원에서 일어난 ‘병오창의’는 을사늑약 이후 호남 최초의 의병이라는 점과 이를 계기로 의병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동의기념비는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기록한 비로 글씨는 의친왕이 썼다. 의친왕(1877~1955) 이강(李堈)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이자 영친왕의 이복형으로 미국 유학 후 대한제국 육군 부장과 대한적십자사 초대 총재를 지냈다. 1919년 임병찬의 아들 임응철(林應喆)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만저우 안둥에서 체포되었다.
동의기념비는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기록한 비로 글씨는 의친왕이 썼다. 의친왕(1877~1955) 이강(李堈)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이자 영친왕의 이복형으로 미국 유학 후 대한제국 육군 부장과 대한적십자사 초대 총재를 지냈다. 1919년 임병찬의 아들 임응철(林應喆)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만저우 안둥에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