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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一齋 李恒 先生 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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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一齋 李恒 先生 遺墟碑)

  • 지정일2016년 7월 26일
  • 소재지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399-1

상세정보

이항(李恒, 1499~1576)은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대곡 성운 등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서울 신혼동(晨昏洞)에서 출생하였다. 1527년 도봉산 망월암에 들어가 수년 동안 학문에 정진하였다. 뜻한 바 있어 모친을 모시고 전라도 태인현 분동마을에 내려와 살았다. 이 곳에 살면서 하서 김인후와 송당 박영과 교유하였다.

주희의 『백록동규(白鹿洞規)』를 읽고 더욱 분발하였고, 사서삼경을 공부하되 『대학(大學)』을 기조로 삼아 경명행수(經明行修)를 주로 독공을 수행하여 마침내 궁구문도(窮究聞道)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학풍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김인후, 기대승과 교유, 토론을 하면서 학문은 더욱 정미해졌다. 경상도 선산에 사는 큰 유학자 양녕대군의 외손자 송당 박영(朴英, 1471~1540)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박영은 문무를 겸비한 학자여서 활쏘기, 말타기 등 무예도 뛰어나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우고 무과에도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판서에 이르렀던 분이다.

일재(一齋)가 태어나기 전 해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기에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 1519년(중종14) 기묘사화, 1545년(명종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학자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설령 벼슬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곧 산림(山林)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처사(處士) 스타일의 학자들이 일세를 풍미하였다. 남명, 화담, 대곡, 일재가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남명은 경상도에서, 화담은 경기도에서, 성운은 충청도에서, 이항은 전라도에서 학문을 강론하고 시국을 논하며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일재 선생의 한시(漢詩) 약 30여 편이 남아있다. 초판본 『일재집(一齋集)』은 1673년(현종14)에 목판본 1책으로 간행되었고, 중간본 『일재집』은 1759년(영조35)에 목판본 1책으로 발간되었고, 『일재속집』은 1887년(고종24)에 목활자본 1책으로 간행되었으며, 『일재유집』은 1936년 석인본 4권 2책으로 간행되었다. 『일재유집』과 『일재속집』을 모아 2002년 국역한 『일재선생문집』을 간행하였다. 전라도 태인 태서리 분동마을에 그를 기리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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