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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과거시험 답안지'
전시일자 2013-09-01 (일) ~ 2013-12-31 (화)
관람시간 ※ 매주 월요일 휴관/관람시간 09:00~18:00
전시자료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
주최 정읍시립박물관
'조선시대 과거제도와 과거시험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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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관리를 뽑기 위해 과거제도(科擧制度)를 시행했다. 과거는 문과, 무과, 잡과로 크게 구분된다. 이중 문과는 소과와 대과로 구별되었다. 소과는 다시 초시(初試)·복시(覆試)의 2단계, 대과는 다시 초시·복시·전시(殿試)의 3단계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모두 5단계를 거쳐야만 문과급제가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과거에는 3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식년시(式年試)가 있었으며, 임시로 보던 과거시험이 있었다. 이러한 과거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시행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중 전시유물에서 보이는 정시(庭試)는 수시로 보았던 부정기 시험으로 알성시와 마찬가지로 문과·무과에만 있었다. 단 1번의 시험으로 급락이 결정되었으며, 짧은 시간에 답을 써서 내게 하는 촉각시(燭刻試)이며, 당일에 채점해 당일에 발표하는 즉일방방(卽日放榜)이었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서시험은 보지 않았고 표(表), 부(賦), 책(策), 잠(箴), 송(頌), 명(銘), 조(詔) 가운데 한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보았는데 주로 표와 부를 많이 냈다. 문체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써야 하는 변려체를 요구했다. 1743년(영조 19)부터는 정시를 초시(初試)와 전시(殿試)로 나누고, 1759년에는 초시합격자에 다시 3경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경서 하나를 배강하게 하는 회강(會講)을 실시하였다. 1884년(헌종 10)부터는 초시를 서울뿐만 아니라 각 도 감영에서도 실시하게 했다. 이리하여 정시는 다른 별시보다 폭넓은 과거가 되었다. 121(과거시험지).JPG
전시유물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로 양치언(미상~1908)이 과거시험 중의 하나인 정시에 응시, 부(賦) 과목에 대하여 작성한 것이다. 양치언(梁致彦) 선생은 1908년 전북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제, 태인, 임실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읍 산외면 도원마을에 묘소가 있다. 유물은 후손인 임채명씨가 정읍시립박물관에 기탁하였다. 크기는 가로 95.5㎝, 세로 140.7㎝이다. 답안지에는 채점 흔적과 그 결과가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답안지는 고려시대 이규보, 정몽주, 조선시대 이황, 윤선도 등 1000여점 이상이 전해져 오고 있다.

첨부파일 121_과거시험지_.JPG (3844 kb) 전용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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