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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각시다리(氏橋)
작성자 관리자

지금의 정읍시 장명동(長明洞)에 각시다리(前 長明里 氏橋洞)라 부르는 다리가 있다.
정읍 동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조금(약 400m)내려가면 각시다리를 볼 수 있다.
원래는 이 다리가 남도(南道)에서 새재(鳥嶺)를 넘어 정읍현아(井邑懸衙)를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정주읍(井州邑)이었을 때는 각시다리가 씨교동(氏橋洞)에 속했었는데 이 동명(洞名)은 이 다리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이 다리는 내장(內藏) 저수지를 원류(源流)로 정읍시내 한복판을 지나가는 물줄기를 받고 있다.
물의 양도 많은 이 다리 밑은 항상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십여년 전만 해도 맑고 깨끗한 물만 흘렀는데 지금은 너무나 오염되어 탁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 다리가 통나무 몇 개를 묶어 놓고 건너는 다리였다고 한다.
천(川)이 깊고 물이 맑아 많은 민물고기가 서식했으며 주민들의 빨래터가 되기도 했다 한다.

조선(朝鮮) 초의 일이었다.
하루는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가 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통나무 몇 개를 걸쳐 만들어 놓은 이 다리는 가마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넓이였다.
신부의 가마가 다리 중간에 이르렀을 때 반대 방향에서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오는 다른 신부의 가마가 있었다.
각기 신부를 태운 두 가마는 다리 한 가운데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로 먼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측은 자기들이 먼저 다리에 도착했음을 주장했으나 거의 동시에 다리에 이른 두 가마 행렬은 양보할 줄을 몰랐다.
옛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경우 먼저 다리를 건너는 신부라야 복을 받아 건강하며 아들 딸 낳아 잘 살게 된다는 속설이 있었고, 한편 늦게 다리를 건너는 신부는 복이 달아나 가난하게 살게 되며 불행이 계속 된다는 미신이 가마를 맨 사람들의 가슴속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다리 위에 두 가마를 맞대 놓고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끝내는 서로 먼저 건너려고 가마꾼들끼리 밀어 부치는 통에 한 가마는 부서지고 신부는 물 속에 빠져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 때만 해도 이 다리 밑은 상당히 깊은 곳이었으며 마침 비가 많이 내려 물의 깊이가 더해 급류(急流)가 되면서 신부는 곧 죽고 말았다.

신랑은 신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었을까? 양보의 미덕(美德)이 미신으로 굳게 닫혀 있었으니 갑갑할 노릇이었다.
신랑은 신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식음을 전폐하고 오랫동안 슬픔에 싸여 있었다.
몇 년이 흐른 후, 남편은 다른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첫 장가 들 때 물에 빠져 죽은 그 신부를 잊을 수 없어 신부가 죽은 날이 돌아오면은 꼭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각시다리에서 가까운(약 300m) 비석거리(前 井邑市 立石洞)에 있는 당간(幢竿)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며 옛 신부를 추모했다 한다.
비석거리란 곳은 큰 돌 두 개가 서 있는데 이 돌은 옛날 절(寺)앞에 세우던 당간(幢竿 : 당간 支柱)이었다.
당(幢)이란 큰 절 문 앞에 세우는 깃대를 말한다.
혹은 중생(衆生)을 거느리고 마군(魔軍)들을 굴복시키는 표지를 뜻하기도 한다.
당간이란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인데 이 비석거리의 당간(높이 : 2.60m 둘레 : 2m)은 마치 대문 앞에 세우는 돌기둥처럼 생겼다.
이 당간이 있기 때문에 이 근방을 지금도 비석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 당간은 푸른 이끼가 낀 채 시멘트 담으로 둘러 싸여 보존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하여 그 이후로 이 다리를 씨교(氏橋 : 각시다리)라 부르게 됐고 그 마을을 씨교동(氏橋洞)이라 불렀다 한다.
이 각시다리 밑에는 지금도 내장(內藏)으로부터 내려오는 많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작년(서기 1990년)에 있었던 복개 공사로 말미암아 이 각시다리도 철근 콘크리트 복개(覆蓋)로 변하고 말았으니 이제 이 다리의 흔적마저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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