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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족두리 바위와 신부(新婦)
작성자 관리자

사랑은 역시 만나야 더 뜨거워지는 것일까?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정읍시 칠보산(七寶山) 아래 죽도록 사랑하는 총각과 처녀가 있었다.
몇 년을 안타깝게 그리워하고 정을 퍼붓던 두 사람은 결혼할 나이가 가까와지자 사모의 열기는 더욱 깊어만 갔다.
하루도 만나지 않고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이 정을 알아낸 처녀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처녀가 바람이 나면 집안이 망한다고 그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 밖에도 못나가게 하고 가두어 두고 말았다.
출입이 금지된 처녀의 애타는 마음은 비길 수 없는 원망스러움과 슬픔의 범벅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는 강경했다.
너무 강경했기에 처녀로서는 부모님의 말씀에 감히 입을 열 기회조차도 없었다.
끝내는, 죽어도 다른 남자한테는 시집갈 수 없다고 애원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는 죽음을 불사한 것이어서 처녀의 몸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처녀의 집에서는 좋다는 신랑감을 물색해 놓고 혼인날을 받았다.
날을 받은 처녀는 마음에도 전혀 없는 남자와 예(禮)를 마쳤다.
그러나, 신부의 마음은 대쪽같았다. 평생을 같이 살자고 약속해 놓은 굳은 맹세를 구길 수는 없었다.
정말,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사랑의 불길은 막을 길이 없었다.
가마를 타고 가던 이 신부는
『한 남자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죽어도 다른 남자한테는 시집갈 수는 없다』고 마음먹고 죽어 버릴 결심을 했다.
신부를 태운 가마가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신부는 별안간 족두리를 벗어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의 몸을 바위 아래로 날려버렸다. 참으로 가슴 아프다.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이승을 짧게 마감하고 바위 아래 한 점 안개로나 피워나기 위한 결단이었을까?
신부가 던진 족두리가 떨어지면서 즉시 족두리 바위가 되고 말았다.
북면 구룡리(九龍里)와 내장면 금붕리, 칠보면 수청리(水淸里) 경계 지점에 위치하여 칠보산 산마루에 있는 큰 바위다.
그 모양이 족두리와 같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볼 때마다 신부의 안타까운 사랑을 동정하고 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비가 오지 않아서 농작물이 말라갈 때 이 족두리 바위 밑에가서 신부의 명복을 빌면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고 한다.
이것은, 신부의 슬픈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것이다.
또한 족두리 바위 밑이 명당(明堂)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남몰래 묘를 ?다.
주위 마을에 족두리 바위 밑에 묘를 썼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이상히도 가뭄이 계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족두리 바위 밑을 뒤지면 묘를 발견 할 수 있어 그럴 때마다 파묘(破墓)해 버렸다.
파묘 후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내려 주었다.
지금도 족두리 바위는 한 남자를 단심(丹心)으로 사랑하는 사연을 안고 유구한 세월의 풍상 속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신부의 사랑,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사랑하므로 아름다운 것이라 안했던가? 인간은 자기가 결심한 만큼 행복한다더니 신부도 저 세상에서 행복했으리라.
피안(彼岸)에 피어난 한송이 사랑, 영원히 아름답기를….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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