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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수리의 부부(夫婦)
작성자 관리자

정읍시(井邑市)에서 서쪽으로 10여km를 가면 유명한 두승산(斗升山)을 볼 수 있다. 이 산 남쪽 기슭에 조용하게 자리잡은 마을 이름이 만수리다.
한 도로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는 오씨(吳氏)가 많이 살았고 남쪽에는 김씨(金氏)가 많이 살았다 한다. 그런데, 조선 초기에 이 산기슭에는 남편 오만석이라는 사람과 부인 김수복이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의 금실은 아주 좋았으나 가난한 것이 한이었다.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 나물을 캐서 연명하고 약초를 캐어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런데, 부인 김수복은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자기는 못났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남편을 아끼고 존경하며 어떻게 하면은 우리 남편을 훌륭한 인간으로 출세시킬 것인가 하고 고심하며 살아갔다.
그리하여 평소에도 아내는 남편에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공부할 것을 권유했으나 무식한 남편은 별 뜻이 없었다.

어느 날은 고부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하셨다.
그 원님은 사냥하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맑은 날을 택하여 수시로 사냥을 나가는 원님이었다.
원님은 부임 후 곧장 두승산의 산길을 잘 아는 사람 즉 길잡이를 구했다.
마침 오만석이란 사람이 산길에 가장 밝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를 불러 들였다.
오만석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평소 산골에서 약초나 캐던 자기가 평생가도 원님 얼굴 한번 구경 못 할 판인데 같이 사냥을 다니자니 이것이 무슨 행운인가 몰라 가슴이 뛰기만 했다.
사냥이 있는 날이면 오만석은 꼭 길 안내를 맡았다.
거기다가 음식과 돗자리까지 들고 다니면서 금방이라도 출세라도 하는 듯 싶어 고된 줄도 몰랐다.
그러나, 오랜 동안 돗자리를 들고 길 안내를 해 주었지만 원님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혜가 가득한 오만석의 부인은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부인은 원님에게 은근히 남편 출세를 기대해 보았으나 어림없음을 알아냈다.

부인은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나의 남편입니다. 당신의 재주를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공부를 전혀 않해 무식해서 그렇지 당신은 이대로 늙을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때는 늦지 않습니다.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그래서, 과거에 합격하여 당신도 원님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재주와 용기는 충분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돗자리나 들고 남의 사냥이나 따라다니는 것이 얼마나 더럽고 창피한 일입니까? 여보, 제가 내일부터 축원 올리고 당신을 죽도록 도울 것이니 당신은 내일부터 공부를 합시다.』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오만석은 주먹을 쥐고 결심하였다.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굳게 언약하였다. 남편은 과거에 합격하기까지 공부하고 아내는 그 뒷바라지를 끝까지 해주겠다는 피맺힌 결단의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을 아내는 남편의 뒤를 도왔고, 남편은 그 아내의 끊임없는 사랑과 격려에 힘입어 과거에 합격하고 말았다.

과거에 당당히 합격하여 금의환향하였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칭찬과 부러움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불행인가? 별안간 아내가 병석에 눕게 되었다.
이름 모를 중병을 얻었으니 살려낼 길이 없었다. 남편은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의원을 청해 왔으나 효험이 없었다.

아내는 과거에 합격한 남편을 두고 그 기다리던 고대광실의 행복도 누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 남편은 절망 속에 눈물로 나날을 보냈다.
과거에 합격을 해놓고도 벼슬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직 아내를 그리워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고향에서 여생을 마쳤다 한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부부의 가운데 이름자 만(萬)자와 수(壽)자를 따서 그 동네 이름을 만수리라 부르고 이 부부의 명복을 빌었다 한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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