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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각교(大脚橋)와 행호승(行乎僧)
작성자 관리자

고려 때의 숭불(崇佛)사상은 유고를 숭상하던 조선에 들어와서도 쉽사리 가셔지질 않았다.
중종(中宗)때 행호(行乎)라 하는 스님이 있었다.
불가(佛家)에서 뛰어난 스님이었다. 행호의 속성(俗性)은 최씨(崔氏)였다.
행호스님은 불교의 엄격한 수도와 계행(戒行)으로 묘법(妙法)을 통달하여 천태종(千台宗)의 영수로 초대받은 대승(大僧)이었다.
유교가 득세하던 그때에도 중종(中宗)의 신임이 두터워 궁중을 무상 출입하였으므로 많은 유생(儒生)들의 투쟁과 반발이 그칠 줄을 몰랐다.
하루는 대학관(大學館) 유생들의 투정과 반발이 그칠 줄을 몰랐다.
별안간 있는 일이라 영문을 모르는 중종은 놀라 그 연유를 물었다.
그 때 불우헌 정극인(不憂軒 丁克仁)이 대답하기를
『상감마마께서 불교를 숭상하시니 유생들은 너무 할 일이 없다하여 오늘 한 사람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중종은 크게 노하여 정극인을 당장 참형(斬刑)에 처하라고 추상같은 어명을 내렸다.

이 때 승상 황희(黃喜)가 말하기를
『상감마마, 후일에 정극인을 무슨 죄목으로 참형했다고 하시렵니까? 어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했다. 이쯤 되니 임금도 불교를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참형할 수는 없었다.
임금은 참형의 어명을 거두고 정극인을 멀리 귀양을 보내기로 했다. 정극인은 이로 인하여 결국 귀양살이를 떠나고 말았다.
세상일은 무서운 것이다.
인심은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몇 년 세월이 흘러 정극인이 귀양살이에서 풀리게 되고 반대로 행호가 제주도로 귀양살이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귀양가는 행호의 일행이 태인(泰仁)의 대각교(大脚橋)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었다.
동서(東西)로 거산(居山) 평야가 펼쳐있고 대각교 밑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맑은 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행호승은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란 듯
『아, 여기는 아름다운 산수(山水)의 고을이구나!』 하며 감탄하였다. 행호는 일행들에게 물었다.
『이 물은 어디서 흐르는 물이기에 이처럼 맑고 깨끗한 것일까?』
『예, 태인 고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태인은 정극인의 고향이었다.
말년에도 정극인은 고향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며 전원 생활을 했다.
이 말을 들은 행호는 가슴이 짜릿했다.
지금 자기가 귀양살이에 오른 것도 정극인 같은 유생들의 모략이라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리하여 행호는
『내가 원수의 고향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하고 마시려던 물을 먹지 않고 돌아섰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인간 세상은 시끌쩍한 모양이다.
자기가 맡은 몫에 최소한의 양보와 성실과 윤리성을 부여할 때 조금은 화평의 대도(大道)로 접어들 것이다. 다 어려운 일이다.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악행을 범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는 명언이 머리를 스쳐간다.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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