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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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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두승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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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승산성

  • 지정번호전라북도 기념물 제54호
  • 지정일1981년 04월 01일
  • 시대고려시대
  • 소재지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21

상세정보

고부(古阜) 지방은 예로부터 서해안(西海岸)의 정치(政治) 군사(軍事)의 요충지(要衝地)로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축성(築城)의 기록(記錄)이 있다.
본 두승산성(斗升山城)은 서기 18년 백제(百濟) 온조왕(溫祚王) 36년에 쌓았다고 하는 백제(百濟) 오방성(五方城)의 하나인 승고산성(升高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두승산 남쪽으로 선인봉 (仙人峰)이 솟아있고, 선인봉 남록(南麓)으로 고려시대(高麗時代) 영주(瀛州) 관할부(管轄府)의 소재지(所在地)였던 곳이 현 고부 입석리이다.

산성(山城)은 선인봉 남쪽 정상(頂上)에 석성지(石城址)가 있으며, 이 석성(石城)은 선인봉(仙人峰)과 두승산(斗升山) 골짜기에 걸처 석성(石城)으로 쌓아져 있고, 서북(西北)쪽으로 지형(地形) 그대로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城) 둘레는 1만8백11척 이라고 하여 두승산은 관아(官衙)가 있는 읍성(邑城)이 아니라 산성(山城)으로 군사적(軍事的)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고부군 산천조(古阜郡 山川條)에 두승산(斗升山) 재군동 오리(在郡東 五里) 재고석성(在古 石城) 주10812척(周一萬八百十二尺) 과우대학(跨于大壑) 영주시구성야(瀛州時舊城也)라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도 승고산성(升高山城)이라고 하였다.
정조(正祖)때 편찬한 고부읍지(古阜邑誌)에는 두승산(斗升山) 재동 오리(在東 五里) 고 칭도순(古稱都順) 우칭영주산(宇稱瀛州山) 산유구봉(山有九峰) 그 최고봉 유석 두석승(其 最高峰 有石 斗石升) 고명이두승산(故名以斗升山)이라 하였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誌) 고부군편(古阜郡篇)에 진산도순(晉山都順) 재군동오리(在郡東五里)라하여 두승(斗升)이라는 이름은 최고봉이 있던 석두석승(石斗石升)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조선조(朝蘚朝) 성종대(成宗代)에 이미 두승(斗升)이라는 이름이 생겼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석두석승(石斗石升)을 어느 철모르는 초동(樵童)이 산(山) 아래로 밀어 떨어뜨려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물리적(物理的)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과 크게 다르다.
석두석승(石斗石升)은 태고(太古)에서 지금까지 두승산(斗升山)의 상징(象徵)으로 그 곳에 의연(毅然)히 있는 것이다.
산성(山城)의 축조(築造) 연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영주시구성(瀛州時舊城)이라고 했고,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삼한시석축(三韓時石築)이라고 하였으나 성(城)의 규모나 측정법으로 보아 삼한시대(三韓時代) 같지는 않고, 성안(城內)에서 백제계(百濟系)의 토기편(土器片)이 나오기도 하나 대부분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토기편(土器片)과 와편(瓦片)이 발견됨으로 영주시구성(瀛州時舊城)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영주(瀛州)라는 이름은 고려(高麗) 태조(太祖) 19년에 고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선사(遊仙寺)가 있는 서북단(西北端)은 그 자체가 산성(山城)이며 거기에는 백제계(百濟系) 토기(土器)가 나오고 있으므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도 작은성(小城)을 설치할 가능성도 있다.

금서룡(今西龍)의 서부지방여행기(西部地方旅行記)에는 옛 노인(古老)들의 이야기에 영주 시대(瀛州時代)의 주치(州治)는 입석리에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입석리에는 그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두승산 성내(城內)가 입석리이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두승산은 동북(東北)의 최고봉이 443.6m로 평지에서 우뚝 솟아 크고 험준하다. 최고봉을 시작으로 하여 서쪽으로 아홉 봉우리가 병풍처럼 연이어져 있으며 서쪽인 유선사(遊線寺)에서 부터는 고부 성황산(城隍山)으로 뻗는 지맥(支脈)과 입석리로 가는 지맥(支脈)이 있다.

최고봉에서 남(南)으로 가는 지맥(支脈)은 700m 지점에서 서(西)쪽으로 꺾이고, 최고봉에서 서남(西南) 방향으로 가는 지맥(支脈)은 중간에 340m의 봉우리 하나를 만들고 다시 서쪽으로 가다가 입석리로 내려간다.
이렇게 큰 등성과 계곡은 천연적 요새(要塞)를 만들어 이 곳 고부를 서해안(西海岸)의 정치 군사(政治 軍事)의 요충으로 만들어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성을 만든(築城) 기록을 볼 수 있다.
두승산은 그 산의 형태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남쪽의 앞에 솟아 있는 것이 선인봉(仙人峰)이고, 그 남록(南麓)이 입석리 쪽이다.
산성(山城)은 입석리에서 들어간 수구(水口) 골짜기에 서문(西門)을 설치하였고, 북으로 약 335m를 쌓아 올라가다가 유선사(遊線寺)에서 입석리로 뻗은 지맥(支脈)의 북변(北邊)을 따라 375m를 가다가 고부(古阜)로 뻗은 지맥 능선(稜線)을 따라 148m를 동남으로 올라가 유선사의 동변(東邊)에 다다른다.

유선사(遊線寺)로부터 연봉(連峰)의 북변(北邊)을 따라 최고봉까지 이르고, 다시 남주(南走)하는 지맥외선(支脈外線)을 따라가다가 약 750m 지점부터는 서쪽으로 꺾어, 남학수구(南壑水口)로 북주(北走)하여 남문지(南門址)로부터 서주(西走)하는 지맥(支脈)을 따라 1,294m를 지나면 서남쪽으로 우각(隅角)이 되고, 이 곳에서 290m를 동북으로 내려가면 서문지수구(西門址水口)에 이른다.
성(城)은 거의 돌(石)로 쌓았으나 대부분 허물어졌으며 그러나 약간은 원형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승고산성(升高山城), 또는 영주산성(瀛州山城)으로 불리는 두승산성(斗升山城)은 선인봉(仙人峰) 남쪽의 정상(頂上)에도 석성지(石城址)가 있으며, 선인봉(仙人峰)에서 두승산(遊仙寺) 골짜기에 걸처 석축(石築)으로 쌓여 있어도 또 하나의 다른 의견(意見)은 성곽(城郭)의 규모로 미루어 보아 군현(郡縣)의 것은 아니고, 영주관찰부(瀛州觀察府)가 지금의 입석리에 있다면 두승산성(斗升山城)은 읍성(邑城: 官衙가 있는 城)이 아니라 산성(山城)으로 군사적(軍事的)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입석리에서 지금의 고부읍성(高阜邑城)으로 옮겨진 시기는 1019년인 고려(高麗) 현종(顯宗) 10년이다. 이 때는 강남(江南) 해양(海陽)의 양도(兩道)가 합하여 전라도(全羅道)로 바꾸어 부르면서 영주관찰사(瀛州觀察使)가 폐지되고 다시 고부(古阜)로 되면서이다.

두승산성 서문지(斗升山城 西門址)

두승산성은 일명 승고산성(升高山城)이라고 하는데 증보 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 한시대(三韓時代)의 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유선사(遊仙寺)가 있는 서북록(西北麓)은 자연그대로가 산성(山城)이며 그 곳에서 백제계통(百濟系統)의 토기(土器) 조각이 발견되므로 백제시대에는 그 곳을 중심으로 작은 성(城)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며 현재의 산성(山城)은 성지(城址) 주변에서 고려 때의 토기(土器)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고려시대 성(城)을 만든 것이라 석성(石城)으로 쌓여져 있고, 서북쪽은 지형 그대로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城) 둘레는 일만 팔백 열한자(一萬八百一尺)이라고 하며 두승산성 (斗升山城)은 관아(官衙)가 있는 읍성(邑城)이 아니라 산성(山城)으로서 군사적(軍事的)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고부행 시내버스로 30분, 승용차로 20분
주변관광소
고부향교, 장문리오층석탑, 군자정, 남복리미륵암석불, 용흥리석불입상, 남복리오층석탑, 고부관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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