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주요 전개 과정
일 자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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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10월 28일 (양력, 12월 18일) |
경주 가정리에서 근암 최옥의 서자로 수운 최제우 출생 |
1827년 | 경주에서 최종수의 아들로 해월 최시형 출생 |
1853년 9월 15일 | 태인현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에서 김대현의 셋째 아들로 김개남 출생 |
1855년 12월 3일 | 고창군 죽림리 당촌에서 몰락 양반 전창혁의 아들로 전봉준 출생 |
1860년 4월 5일 | 최제우 경주 용담정에서 동학창도 |
1861년 6월 22일 | 정읍현 남일면 두교리에서 손호열과 평강 채씨 사이의 장남으로 손화중 출생 |
1864년 3월 10일 | 최제우 처형 |
1876년 2월 3일 (양력, 2월 27일) |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 체결) |
1892년 4월 28일 | 조병갑 고부군수로 부임 |
1892년 10월 17일 | 충청감사 조병식에게 동학의 공인을 요구하는 교조신원운동 전개(공주취회) |
1892년 11월 2일 | 전라감사 이경직에게도 동학의 공인을 요구하는 소지문 제출(삼례취회) |
1893년 2월 11일 | 동학 공인을 위해 광화문 복합상소 시작 |
1893년 3월 11일 |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기치를 내건 보은취회 개최, 정치적 성격으로 변화 |
1893년 3월 21일 | 보은취회보다 한층 정치적 지향이 강한 금구원평취회 개최 |
1893년 11월 15일 | 고부농민 군수 조병갑에게 수세감면 호소 |
1894년 1월 10일 | 고부 농민들 말목장터에서 봉기하여 고부관아 점령(고부농민봉기) |
1894년 2월 15일 | 조선 정부 조병갑 체포, 전라감사 김문현 감봉, 고부군수 박원명 부임, 안핵사 이용태 파견(→농민군 해산이후 고부에서 학정 자행) |
1894년 3월 20일 | 무장현 당산에서 창의문(포고문) 낭독(무장기포) |
1894년 3월 25일 | 백산결진(총대장-전봉준, 총관령-김개남·손화중) ※ 격문(檄文)과 4대 명의(名義), 12개조 기율 선포 |
1894년 4월 7일 | 정읍 황토현에서 전라감영군 격파(황토현 전투) |
1894년 4월 8일~16일 | 농민군 흥덕 · 고창 · 영광 · 함평 점령 |
1894년 4월 18일 | 양호초토사로 임명된 홍계훈의 경병 금구 태인 도착이후 정읍(19일)→고창(20일)→영광(21일) 이동 |
1894년 4월 23일 | 장성 황룡촌에서 경군 선발대(이학승, 원세록, 오건영)와의 전투에서 승리(황룡촌 전투) |
1894년 4월 27일 | 농민군 호남의 수부(首府)인 전주성 무혈 입성(전주성 점령) |
1894년 4월 29일 | 정부 긴급대신회의를 열어 청군의 파견을 요청하는 조회문을 청 원세개 전달 |
1894년4월 28일~5월 3일 | 농민군과 경군 전주성을 둘러싸고 전투(이른바 완산전투) |
1894년 5월 2일~7일 1894년 5월 6일~12일 | 청군 2,500여명 충청도 아산만에 상륙 일본군 톈진조약에 따라 약 6,300여명 병력 인천에 상륙 |
1894년 5월 8일 | 농민군은 폐정개혁과 신변보장을 철수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홍계훈이 신변보장을 약속하면서 타협을 맺음(이른바 전주화약) 해산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53개 고을에 집강소(도소) 설치 |
1894년 6월 21일 | 일본군 조선 경복궁 점령(경복궁 쿠데타) |
1894년 6월 25일 | 일본군 아산만 앞 풍도에 주둔한 청군 공격(풍도해전) |
1894년 6월 27일 | 충남 아산·성환 전투에서 청군 1천여명 전사 |
1894년 7월 1일 | 일본 청에 대해 선전포고, 청·일전쟁 본격화 ※ 청·일전쟁 결과 중국은 수 천 년간 이어온 동아시아 패권을 일본에게 내주고 경제적 파멸을 맞이하게 되었고, 조선은 일본 자본주의의 원료공급기지 또 그들의 자본제 상품시장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끝내는 식민지가 되었다. 반면 일본은 팽창주의적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
1894년 7월 6일 |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 전주에서 회담을 개최하면서 관민상화 원칙의 집강소 설치 운영 합의 |
1894년 7월 15일경 | 전봉준과 김개남 남원대회 개최 |
1894년 7월~8월 | 전라·충청·경상도 삼남 지방에서 척왜봉기와 더불어 폐정개혁을 요구하는 봉기가 잇따라 발생 |
1894년 9월 10일경 | 농민군 일본의 내정간섭 심화와 축출을 위해 전라도 삼례에서 재봉기 준비 |
1894년 9월 21일 | 농민군 무력 진압을 결정한 조선 정부 양호도순무영 설치 |
1894년 10월 12일 | 군사와 군수품을 확보한 전봉준의 농민군 삼례를 출발하여 논산 도착 |
1894년 10월 15일 |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후비보병29대대 농민군 토벌을 위해 출동 |
1894년 10월 16일 | 최시형으로부터 지휘권을 넘겨받은 손병희 보은을 출발하여 논산에 합류 |
1894년 10월 21일 | 전봉준과 손병희 농민군 논산에서 공주로 진격 |
1894년 10월 23일 | 공주 남쪽 10Km 지점에 위치한 이인에서 공주전투 시작 |
1894년 10월 24일 | 효포전투(공주에서 10리 밖) |
1894년 10월 25일 | 전봉준의 진두지휘 아래 공주성 총공격(능치전투) |
1894년 11월 8일 | 농민군 부대를 2대로 나뉘어 이인과 판치의 관군 공격(공주 2차 공격 시작) |
1894년 11월 8일~11일 | 2차 공주전투(이른바 우금치전투) |
1894년 11월 14일 | 관군의 추격을 받기 시작한 농민군은 노성에서 논산으로 밀려남 |
1894년 11월 15일 | 논산 황화대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강경으로 패주 |
1894년 11월 23일 | 전봉준이 이끄는 3천명의 패잔군 금구 원평에서 접전이후 태인으로 패주 |
1894년 11월 27일 | 태인전투를 끝으로 농민군 완전히 해산 |
1894년 12월 1일 | 김개남, 태인현 종송리 매부 서영기 집에 숨어 있다 옛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강화병방 황헌주에 체포, 전주 감영 이송 후 전라감사 이도재가 전주 초록바위에서 효수(12월 13일) |
1894년 12월 2일 | 전봉준, 순창 피노리에서 주민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 재판을 받고 최경선·손화중 등의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1895년 3월 29일) |
1894년 12월 11일 | 손화중, 고창군 길마재에 있는 이모씨의 제실(祭室)에 숨어 지내다 체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