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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파백정기의사 순국 제73주기 추모식 및 개관3주년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작성자 문화예술과
작성일 2007-05-31
조회수 686

정읍이 낳은 의열투쟁의 횃불 !
구파백정기의사 순국 제73주기 추모제 및
기념관 개관3주년 기념 행사 열려..

(사)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회장 박기수)에서는 1933년 중국 상해에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아끼를 암살시도·피체되어 1934년 6월 5일 일본 나가시키현 이사하야 형무소에서 순국한 구파 백정기의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백정기의사 순국 제73주기를 맞이하여 오는 6월 5일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의열사 광장에서 거행되는 본 행사에서는 헌화 및 분향 등 기념식을 비롯하여 전시관 및 홍보영상물을 관람한다. 또한 지난해부터 개최한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를 개최하여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문예창작을 도모함과 동시에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한다.

백정기의사는 1896년 1월 19일 부안읍 신운리에서 출생, 소년시절 현 영원면 은선리로 이주한다. 의사의 독립운동 행장은 1914년 일본경찰 폭행에서 비롯되며,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직접행동을 결의하고, 동지규합, 자금 모금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1921년 일본에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립운동노선을 택하게 된다. 1924년 중국에서 결성된 ‘재중국조성무정부주의 연명’에 참여하고 1928년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한족총연합회’의 일원이 되는 등 아나키스트로서의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1931년에는 ‘항일구국연맹’산하 비밀결사단체인 ‘흑색공포단’의 행동책임자로서 막중한 소임을 다한다. 일본 군수물자수송선과 천진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대일 결사항전에 돌입하게 된다.

1933년 ‘육삼정의거’는 백정기의사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육삼정의거는 1933년 일본공사 아리요시아끼가 일본군 수뇌와 중국 친일 고관들을 모아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리집에서 주연을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타도하고 암살하고자 했던 의거이다. 백정기의사는 제국주의의 원흉들을 몰살하기 위해 이강훈, 원심창 의사와 함께 폭탄을 품고 습격하였으나, 일본 첩자의 밀고로 안타깝게 붙잡히고 만다. 비록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백의사의 살신성인적인 희생으로 중국내의 항일세력이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등 동아시아 판도내의 국제관계 변화를 가져오게 한 역사로 평가되고 있다.

백정기의사는 1933년 일본 나가사키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오랜 지병으로 인해 39살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조국광복 후 1946년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골이 봉환되고 국민장을 거쳐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한다.

정읍에서는 백의사의 독립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순국기념비를 도민의 성금을 모아 영원면 은선리에 건립하였다. 1996년 (사)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백정기의사기념관을 비롯한 백정기의사유적지 조성사업을 시작, 2004년 6월 5일 기념관을 개관하고,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백정기의사기념관은 홈페이지 구축·운영을 통해 네티즌의 참여를 유도하고 매년 6월 5일에는 추모제를, 그리고 8월 15일에는 광복절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였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신독립운동’ 역사캠프를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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