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상평이란 3보평의 '윗들'이란 뜻을 한자 표기한 것이며 아랫들이란 뜻으로 하평리(下坪里)라 한다. 『호구총수』와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정읍현(정읍군)서이면 상평리로 기록되어 있다. 상평동은 원 정주읍의 상평리(上坪里)와 하모리(下茅里) 구역으로 상평리의 상평(上坪), 칠정(七井), 당현(唐峴), 신기(新基), 용흥(龍興), 향재(香才), 산중동(山中洞)과 하모리(下茅里)의 모촌(茅村), 월천(月川)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모리는 용흥(龍興), 월천(月川), 상모(上茅), 하모(下茅) 고부군 소정면 공평리(公平里)의 일부, 상평리는 당고리(唐古里), 상평(上坪), 서기리(西基里), 삼거리(三巨里), 산우(山右), 향지(香芝), 성재(成才), 칠정(七井), 와룡(臥龍), 향자(香子) 일부로 나누어졌다. 1936년에는 상평리(上坪里), 당고리(唐古里), 서기리(西基里), 삼거리(三巨里), 산우리(山右里), 향지리(香芝里), 성재리(成才里), 칠정리(七井里)를 묶어 상평동이라 하였다. 상평이란 3보평의 '윗들'이란 뜻을 한자 표기한 것이며 아랫들이란 뜻으로 하평리(下坪里)라 한다. 1981년 시 구역편성 때 상평동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의 삼산리(三山里)는 삼산(三山), 신흥(新興), 연기(連基), 내동(內洞), 쌍계(雙溪), 자노리(自老里)로 나누어졌고 과교리(科橋里)는 신계(新溪), 백운(白雲), 구계(九溪), 월암(月岩), 낙포(洛浦), 고안(古安), 궁계(弓溪), 칠정(七井), 과교(科橋)로 나누어졌으며, 진산리(辰山里)는 영정(永丁), 화산(花山), 삼군(三君), 서암(西岩), 궁계(弓溪), 남이면 제내(堤內), 서이면 자노(自老) 일부와 진산(辰山)으로 나누어졌다. 과교동은 원 정주읍의 삼산(三山), 과교(科橋), 진산리(辰山里)의 3개 리 구역으로 불리는 삼산리(三山里)의 삼산동(三山洞), 음성동(陰城洞), 과교동(科橋洞), 백운동(白雲洞), 구계동(九溪洞)과 진산리(辰山里)의 진산(辰山), 삼군(三君) 등으로 나누어졌는데 1981년 4월 시 구역편성에 따라 과교리가 과교동이 되었다.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내장(內臟)의 용산(龍山), 교암(校岩), 신월리(新月里)가 편입되었고 용산리(龍山里)의 와룡(臥龍), 현월(懸月), 신정(新井), 부암(夫岩), 석산(石山), 신촌(新村), 남성(南星)동리와 교암리(校岩里)의 석고(石古), 구암(九岩), 부사(夫祠), 교동(校洞), 삼거리(三巨里), 계화(桂花), 내지(內之), 외지(外之), 고안(古安), 반암(盤岩) 그리고 신월리(新月里)의 죽산(竹山), 월성(月城), 칠성(七星), 구정(九丁), 신성(新城)이 편입되었다.

  • 1981. 7. 1.상평동, 과교동 설치
  • 1989. 1. 1.입암면 신정리 ⇒ 과교동 편입
  • 1990. 4. 1.과교동 음성 ⇒ 상평동,상평동 당현 ⇒ 시기3동 상평동 월천일부 (13세대) ⇒ 연지동 편입
  • 1998. 10.3.상교동 설치 (상평동,과교동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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