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이 석불(石佛)은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으로 왼손은 가슴에 들어 올렸으며 오른손은 절단(切斷)되어 수인(手印)을 알 수 없다.
목에는 삼도(三道. 세 개의 줄)가 있고 머리는 절단된 것을 “시멘트”로 접착한 흔적이 보인다.
옷 주름은 매우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전체적으로는 마멸(磨滅)이 심한 상태이나, 조각 등의 양식(樣式) 및 수법(手法)으로 볼 때, 고려시대(高麗時代) 작품으로 추정(推定)한다.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 “고부면 용흥리 해정사지 해정동 동쪽 산중턱에 있음”(古阜面 龍興里 海鼎寺址 亥丁洞 方六町 山麓)이라 적혀 있다.
돌 부처(石佛)의 높이는 땅 위에서 1.70m이고, 머리의 높이(頭高)는 0.47m이며, 하체의 폭(下體輻)은 0.53m∼0.33m, 좌수(左手)는 가슴에 들어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짓고 있는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이다.
목에 삼도(三道)가 있고, 옷주름은 매우 형식적으로 물결을 짓고 있는데, 좌측하(左側下)에 0.07m∼0.055m, 넓이 0.44m, 깊이의 방공 1개(方孔一個)가 있다.
무릎이하는 지하에 묻혀 있다.
머리(頭部)는 절단(切斷)된 것을 “시멘트”로 접착시켰고 내려뜨린 왼쪽 손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거기에다가 석불(石佛) 표면(表面)은 마멸(磨滅)이 심하다.
지금은 가건물(假建物)에 안치(安置)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