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읍시 문화관광

정읍관광

|정읍관광|문화유적|도지정유산

도지정유산

정읍향교 대성전

이전 이미지 다음 이미지

정읍향교 대성전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1984년 04월 01일
  • 시대1638년 이건, 영조 52년(1775년) 중수
  • 소재지정읍시 충정로 184 (장명동)

상세정보

근세조선(近世朝鮮)의 전통적(傳統的)인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하는 관립(官立)으로는 중앙에 성균관(成均館)과 사학(四學)이 있었고 지방(地方)에는 향교(鄕校)가 있었으며, 사립교육기관(私立敎育機關)으로는 서원(書院)과 서당(書堂)이 있었다.
향교는 중앙에 있는 성균관의 규모를 축소(縮小) 한 것이 지방의 향교(鄕校)이다. 향교는 대성전(大成殿)이 있어, 공자(孔子)의 위패(位牌)를 안치(安置)하고 대성전앞 좌 우(左右)에 동무(東 ) 서무(西撫)를 세우고 이곳에는 유교에 공헌(貢獻)한 많은 현인(賢人)을 배향(配享)하였으니, 이것이 향교의 문묘(文廟)이다.

문묘의 배향에는 인물(人物)과 그 수(數)는 고을의 격(格)이나 향교의 규모(規模)에 따라 대설위(大設位), 중설위(中設位), 소설위(小設位)로 구분하여 정해지는데 대개 관찰사(觀察使)가 상주(常駐)하는 부(府)는 대설위이고, 부(府)와 군(郡)이 중설위이며 현(縣)이 소설 위라고 한다.

대설위(大設位) 향교에는 공자(孔子: 大成至聖文宣王) 아래 사성(四聖: 顔子, 曾子, 子思, 孟子)과 십철(十哲)과 송조 육현(宋朝六賢)의 위패(位牌)를 대성전(大成殿)에 모시면서 공자 72현(孔子 七十二賢), 한, 당(漢, 唐) 이십이현(二十二賢)을 배향(配享)하며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 聰(弘儒候), 安裕(文成公), 金宏弼(文敬公), 趙光祖(文正公), 李 滉(文純公), 李 珥(文成公), 金長生(文元公), 金 集(文敬公), 宋俊吉(文正公)) 가운데 아홉 분은 동무(東撫)에 모시고, 또 아홉 분(崔致遠(文昌候), 鄭夢周(文忠公), 鄭汝昌(文戱公), 李彦迪(文元公), 金麟厚(文正公), 成 揮(文簡公), 趙 憲(文烈公), 宋時烈(文正公), 朴世采(文純公)은 서무(庶務)에 모셨다.

중설위(中設位) 향교에는 오성(五聖: 孔子와 四聖)과 십철(十哲), 송조육현(宋朝六賢)을 대성전(大成殿)에 모시고 그 동서무(東西撫)에 우리나라의 십팔현(十八賢)을 모신다. 소설위(小設位) 향교는 오성(五聖)과 송조 사현(宋朝祠賢)을 대성전에 모시고 그 동서무 (東西撫에)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을 모신다.
문묘(文廟)의 앞뜰에 교육을 시키는 도장(道場)인 학교가 있으니, 이것이 명륜당(明倫堂) 이다.

그 좌우에 학생들이 기숙(寄宿)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으니 요즈음의 기숙사 (寄宿舍)와 같은 것이다.
직원(直員)은 종육품관(從六品官)의 교수(敎授)와 종구픔관(從九品官)의 훈도(訓導)와 품 위(品位)가 없는 학장(學長)등 세 가지 종류의 직원을 두었는데 이는 고을이 크고 적음에 따라 다르게 배치(配置)하였으니 주, 목, 부(州,牧,府)에는 교수(敎授) 군, 현(郡, 縣)에는 교수(敎授) 혹은 훈도(訓導)를 두었고 500호(戶) 미만의 작은 곳에는 학장(學長)만 두었다. 정읍향교(井邑鄕校)는 조선조 태조(太祖) 7년(戊寅)인 1398년에 지금의 귀미동(井邑市 龜尾洞)에 있었던 활터자리에서 창건(創建)하였다.

그 뒤 1638년인 인조(仁祖) 16년(戊寅)에 유 황(柳 璜), 남구익(南九翼), 손후유(孫後裕) 등 유림(儒林)들이 의견을 내여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북쪽에 명륜당(明倫堂)을 두고, 남쪽에 양사재(養士齋)와 홍전문(紅箭門)과 교직사 (校直舍)는 1740년인 영조(英祖) 16년(庚申)에 중건(重建) 중수(重修) 하였다.
정읍향교는 소설위(小設位) 향교로 중국(中國)의 오성(五聖)과 사현(四賢) 그리고 우리나 라의 십팔현(十八賢)을 모시고 있다.
년(年)에 두 번 춘추(春秋) 대석전(大石殿)과 매달 두 번의 삭망(朔望) 분향제(焚香祭재 를 올리고 있다.

1903년인 광무(光武) 7년(癸酉)에 군수(郡守) 조한기(趙漢箕) 장의(掌議) 유하상(柳夏相) 의 발의로 대성전(大成殿)을 중수 하였다.
1913년(癸丑) 왜정(倭政) 4년에 장의(掌議) 오학근(吳學根), 유연대(柳然大) 등이 발의에 의하여 양사재(養士齋)를 보충하여 고치고(補修) 향교의 담장을 보수(補修)하였다.
1915년(乙卯)인 왜정(倭政) 6년에 군수 한 욱(韓 旭) 직원(直員) 박흥규(朴興奎)가 대성 전(大成殿)을 보충하여 고쳤다(補修).

1927년(丁卯)인 왜정(倭政) 18년에 군수 이동한(李東漢) 직원(直員) 박흥규(朴興奎) 장의 (掌議) 오학근(吳學根)이 명륜당(明倫堂)을 중수(重修)하였다. ―泰仁縣 東軒을 얾겨다 지 은 것이라고도 한다. ―
1928년(戊辰)인 왜정(倭政) 19년에는 직원(直員) 이대헌(李大憲)이 명륜당 담장을 고쳐 쌓고 양사재(養士齋) 기와를 갈았다.(飜瓦)

1931년(辛未)인 왜정(倭政) 22년에는 군수 백정기(白貞基)가 1933년(癸酉)인 왜정(倭政) 24년에는 조동민(趙東敏)이 대성전(大成殿)을 보수(補修)하였다.
대성전(大成殿)은 정면(正面)이 3칸(間)이며 옆면이 3칸(間)으로 된 맞배지붕의 건물로 화강암(花崗巖)의 주초(柱礎) 위에 두리기둥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明倫堂)은 정면(正面)이 다섯칸(間) 옆면이 네칸(間의) 맞배지붕이다.
양사재(養士齋)는 정면(正面) 네칸(間), 옆면 네칸(間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전하여 내려오는 유물(遺物)로는 제기(祭器), 제복(祭服) 서적(書籍)등이 있는데 향교 기록 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목록

  • 관리부서동학문화재과/문화재정책팀
  • 연락처063-539-6911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