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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記錄)에 의하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읍조(井邑條)에 의하면 "백련사 혹은 내장사 재내장산(白蓮寺 或云 內藏寺 在內藏山)" 이는 "백련사(白蓮寺)는 혹은 내장사(內藏寺)라고도 말하며 내장산(內藏山)에 있다"고 하엿다.
원래는 백련사(白蓮寺)였으니, 백제(百濟) 의자왕(義慈王) 20년인 서기 66년에 유해선사 (幼海禪師)가 세웠다 하였는데 언제부터 백련사라 하였는지는 알수 없다.
근래에 와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백련(白蓮)을 벽련사(碧蓮寺)로 바꾸어 불러 절의 액자를 써 걸었는데 6.25 사변으로 타 버렸다.
뒤인 1925년에 학명선사(鶴鳴禪師)가 본전(本殿)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을 새로 고쳐 짓고 (改築), 요사(寮舍: 僧侶등의 宿所)를 고치는 동시에 선원(禪院) 한 동(一棟)을 세웠으나, 6.25사변으로 1951년 1월 25일인 음력 12월 10일에 전부 타 버렸다.
서쪽에는 해 수를 알수 없는 탑식(塔式)으로 만들어진 부도(浮屠: 高僧의 사리나 遺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가 남아 있다.
뒤에 있는 암벽(岩壁)에는 이 고장 태인(泰仁) 출신인 여류(女流) 몽련당(夢蓮堂) 김진민 (金 珉)이 쓴 석란정(石蘭亭)이라는 각자(刻字)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