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1666년(顯宗 7年)에 창건하여 백광언(白光彦)을 향사(享祠)하고 1702년(肅宗 28年) 전덕린(全德麟), 송지순(宋之順), 이지시(李之詩), 이지례(李之禮), 송인신(宋寅臣), 1806년(純祖 6年) 권극평(權克平), 1842년(純祖 6年) 최응립(崔應立), 백함생(白咸生)을 추배(追配)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백광언 선생의 출생지인 도동(道洞:瓮洞面 七石里)에서 사우(祠宇)를 세웠다. 1868년(高宗 5年) 정부의 영(令)에 의하여 헐었으나 1924년 유림(儒林)들의 발의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1979년 복설(復設)하였다.
□ 향사인물(享祀人物)
백광언(白光彦:1554∼1592):관(貫)은 수원(水原), 자(字)는 명선(明善),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고성현령(古城縣令)과 북청판관(北淸判官)을 지내고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창의(倡義)하여 전라도 관찰사(全羅道 觀察使) 이광(李侊)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용인(龍仁) 싸움에서 순절(殉節)하니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주고 충민(忠愍)의 시호(諡號)를 내리다.
전덕린(全德麟):관은 천안(天安), 자는 상경(祥卿), 판관(判官)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 백광언과 같이 창의(倡義)하여 용인(龍仁) 싸움에서 순절했다.
송지순(宋之順:1547∼1615):관은 여산(礪山), 자는 정숙(正淑), 임진왜란 때 창의하니 군자감정(軍資監正)을 특별히 제수받고 사후(死後)에 정민(貞愍)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이지시(李之詩):관 단양(丹陽) 호군으로 임진왜란때 용인에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지례(李之禮):관 단양(丹陽) 호군으로 임진왜란때 용인에서 싸우다 순절(殉節)하니 장민(莊愍)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권극평(權克平):관 안동(安東), 자 평보(平甫), 호 칠송(漆松), 임진왜란때 창의(倡義)하여 보공장군(保功將軍)이 서훈되고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오충도제부도사(五衝都提府都事)에 이르렀다.
백함생(白咸生:1589∼1637):백광언(白光彦)의 아들이다. 웅천현감(熊川縣監)으로 이괄(李适)의 란(亂)에 전공(戰功)으로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을 받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에 강화(江華)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최응립(崔應立:1599∼1637):관 삭령(朔寧), 자 주극(柱極), 호 동계(東溪), 이괄의 란 백함생(白咸生)과 창의하여 전공(戰功)으로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을 받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때 강화 싸움에서 순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