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이 성(城)은 시루봉(甑峯)이라고 불리고, 높이 101m 되는 낮은 산위의 테메식 산성(山城)이다.
교통상의 요지(要地)를 이룬 산 위에는, 남북방향에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중앙부가 말 안장처럼 생겼고, 이들을 길쭉한 타원형으로 두른, 성벽(城壁)의 흔적이 확인된다. 이 성(城)의 둘레는 약 415m이고, 산비탈의 외면(外面)이 계단처럼 되어, 동쪽에 약간의 석축(石築)이 확인된다.
북문터(北門址)와 서문터(西門址)로 짐작되는 단절된 부분이 있어, 두 개의 문이 있었던듯 하다.
성내(城內)에서는, 매우 오래된 시기의 그릇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초기의 성책형태(成冊形態)를 취하고 있어서, 백제시대(百濟時代)부터 있어온 성지(城地)로 추정되고 있다.
남북의 길이가 180m이고, 폭(幅)은 남동(南東)쪽이 45m이며, 북동(北東)쪽은 37 m이고, 허리부분(腰部)은 최소 27m의, 누에고추형의 산성(山城)이다.
동변(東邊)의 길이가 171.8m이고 북변(北邊)의 길이 53.6m이며, 남변(南邊)의 길이가 34.8m로써, 주위는 414.9m에 이른다.
위곽내(圍郭內)의 총면적은 5.927㎡이다.
시루봉(甑峯)은 덕천면 우덕리(德川面 優德里)와 신월리(新月里)의 경계를 이룬 101m의 남북으로 가늘고 긴 봉우리이다.
이 시루봉은 132m의 간격을 두고, 남북 두 봉우리(兩峰)가 있는데, 성지(城址)는 양봉우리 외연(外緣)과, 중간의 말안장 같은, 평탄한 대지(臺地)를 감고있는, 토단성책지(土段城柵地)로서, 동서면은 석축이 노출되고, 성벽 안쪽에 회랑도가 있 고, 성북단(城北端)과 요부(腰部) 서측(西側)에, 각각 북면 서문지(西門地)가 있다.
이 우덕리(優德里) 산성(山城)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성지(城地)이다.
시루봉(甑峯) 토성(土城)은, 은선리 동쪽 약 4㎞ 지점에 있으며, 전주에서 태인을 거쳐 고부쪽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로에 있어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고사부리(古沙夫里)의 중방고사성(中方古沙城)에 속한, 외성(外城)으로 추측된다.
시루봉(甑峯)의 동쪽에 있는 "손바라기"(客望: 德川面 新月里)는 우리나라 신흥종교의 비조(鼻祖)인, 강증산(姜甑山: 이름은 一淳)의 출생지로, 호(號) 증산(甑山)은 주봉(主峯)인 시루봉(甑峯)의 산 이름을 딴 것이다.
시루봉의 곳곳에서는, 성문지(城門址)와 토루(土壘)를 쌓은 흔적이 있고, 백제의 토기 조각이 많이 산재하여 있다.
이 시루봉은, 1894년 당시 동학혁명군(東學革命軍)이, 황토현(黃土峴) 전투가 있기전에, 유군(留軍)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