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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비조 강일순(강증산)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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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비조 강일순(강증산) 탄생지

  • 시대근대(1871년, 고종 8년)
  • 소재지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 438

상세정보

강일순은 정읍 덕천면 객망리(현 신월리 신송마을) 시루봉 아랫마을에서 태어났다. 신송 마을은 정읍에서 덕천을 거쳐 황토현으로 가는 길에 정우와 신태인, 고부로 갈라지는 사거리 못 미쳐 300m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노인들에게 속칭 '손바래기'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강증산 성지 푯말이 세워져 있다. 탄생지에는 강증산 상제하강지(姜甑山上帝下降地)라 쓰여 있고 방안에는 강증산의 영정이 걸려 있으며 양쪽에는 증산계열의 모든 종교에서 쓰는 주문인 태을주(吽哆 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耶都來 吽哩喊哩 娑婆訶)가 걸려 있다. 그리고 증산교의 교조는 강일순의 호가 증산이었으므로 강증산(대나무 삿갓을 쓰고 야都來 훔弼喊弼 娑婆訶)가 걸려 있다.
▷ 증산 강일순
강일순(姜一淳)은 진주강씨(晉州姜氏)이고 이름은 일순(一淳)이며 자(字)는 사옥(士玉)이다. 호(號)는 증산(甑山)이니 1871년(高宗 8年. 辛未) 9월 19일(陰 11月 1日)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古阜郡 畓內面 書山里:지금 梨坪面 斗池里)에서 아버지 흥주(興周) 어머니 권씨(權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권씨부인은 답내면 서산리 권씨 가문에서 이웃 우덕면 신월리 객망(優德面 新月里 客望:손바래기)으로 출가하여 친정으로 근친갔다가 임신하여 13개월만에 친정에서 해산을 한 셈이다. 이곳이 지금의 덕천면 신월리 신송이고, 양자 강영형이 살고 있었던 집터이다.
우리 나라 신흥종교(新興宗敎)의 비조(鼻祖)라 칭하는 증산은 30세가 될 때까지 조선 8도(八道)를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고 1901년(高宗 光武 5年) 7월 5일 모악산(母岳山:지금 完州郡과 金堤郡의 경계) 대원사(大元寺)에서 도(道)를 이루었다고 한다.
1907년(光武 6年) 4월 금구군 수류면(金溝郡 水流面:현 金堤郡 金山面) 원평(院坪) 장터에서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김형열(金亨烈)을 만나 이때부터 그의 집에서 머물었다.
또 1907년(隆熙 1年) 5월에 용암(龍岩里:현 金堤郡 金山面) 주막에서 차경석(車京石:뒷날 普天敎. 敎主 笠岩面 大興里)을 만나 6월 5일 차경석을 따라 대흥리로 왔으며 그해 11월 3일에는 차경석의 이종 누이동생 고씨부인(高氏夫人)과 결혼을 했다.
그해 12월 26일 새벽 고부 운선리(古阜 雲仙里) 신경수(申京洙) 집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는 도중 순검(巡檢:경찰)에게 포박(捕縛)되어 잡혀 갔었으나 의병(義兵)의 증거가 없어 결국은 다음해 2월 4일에 풀려났다.
그 사건이후 4월에 구릿골(銅谷:현 金堤郡 金山面)로 돌아와 종도(從徒) 김준상(金俊相)의 집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한약방을 차렸으나 이것 역시 종교형태의 것이었다.
증산의 종교사상(宗敎思想)은 최수운(崔水雲:名濟愚)의 동학사상(東學思想)과 함께 우리나라 근세사회의 사상의 효시(嚆矢)이다. 동학사상은 인내천(人乃天)으로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라는 인간존엄 사상을 자각시켰으며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지상선경(地上仙境) 이룬다는 것으로 현실의 기존질서를 타파하고 혁명적 의식(革命的 意識)을 고취시켰으니 이것이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으로 발전한 것이고 증산사상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발전했다.
증산 사상의 핵심은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형태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는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만능의 권능(權能)으로 천(天), 지(地), 인(人)의 삼계(三界)를 모순된 선천(先天:現在)에서 후천(後天:未來)으로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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