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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박준승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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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박준승선생 묘

  • 소재지정읍시 충정로 214-3 (장명동)

상세정보

공(公)은 3.1운동(三.一運動)의 민족(民族) 대표이며, 동학(東學)에 입도(入道)하여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에 참가하였다.

자암 박준승선생의 묘비문(泚菴 朴準承先生의 墓碑文)

偉大하도다.
公이시여, 靑史에 길이 빛날 抗日鬪爭과 革命精神은 온겨레에 民族精氣와 自主精神을 일깨워 주셨으며, 世界萬邦에 우리 民族의 優秀性을 宣揚하였도다.
公의 姓은 朴이요, 諱는 準承이요, 號는 菴이요, 本貫은 密陽이니, 高麗 文科司憲糾正太師 謚 武烈公 鉉의 二十一世孫이시며, 考通政大夫 諱 昊鎭, 淑夫人 焉川卜氏의 第三子로 檀紀 四一九九年 丙寅 十一月 二十四日 全羅北道 任實郡 靑雄面 南山里에서 誕生하시어 檀紀 四二四八年 井邑郡 山外面 平沙里에 移居하시었다.
公은 幼時로부터 天性이 穎悟하고 才藝가 出衆하여 愛國愛族하는 恩想이 堅固하시었다.
彌時에 國政이 解弛하여 國內에는 貧官汚吏의 橫暴가 恣行되고,國外로는 東蠻 西夷의 侵略이 甚重하여 民生이 토탄에 빠진지라 이에 慨歎한 公은 同志를 모아 大勢를 是正하려고 東學에 入道하여 檀紀 四二二七年 甲午에 革命을 일으켜 除暴救民 斥洋斥倭의 旗幟를 높이 들고 奮鬪하였으나 外國 軍隊의 介入으로 革命偉業은 중도에 挫折되었다.
그러나 公은 初志를 不屈하고 同志 糾合과 心身鍛鍊에 더욱 注力하여 檀紀 四二三七年 甲辰에 斷髮黑衣의 開化運動에 首接主로 活躍하셨으며, 全羅道 巡喩委員, 天道敎道師, 敬道師, 中央總部監事正 等의 敎職을 歷任하셨다.
檀紀 四二五二年 乙未 三月 一日, 擧族的 大義擧인 自主獨立運動에 民族代表 三十三人中 一人으로 抗日運動을 領導하시다가 倭警에 被檢되어 西大門監獄에서 二年間 獄苦를 겪으시던中 얻은 病으로 檀紀 四二五四年 辛酉 三月 二十三日 五十六歲를 一期로 怨死하시었다.
公의 墓所는 井邑郡 北面 馬亭里에 있었으나 場所가 狹小하고 環境이 不適하며 墓墳이 崩壞하고 草莎가 頹脫하여 空山落木 一 土에 庸條荒凉한 慘狀은 目不忍見이었다,
이에 慨歎한 지방 人士의 發起로 公이 가신지 四十五年을 경과한 檀紀 四二九八年 乙巳 六月에 官民 一體의 渾然한 精誠으로 이곳을 澤하여 公의 遺骸를 社會葬의 禮式으로 安葬하고 墓碑를 竪立하여 公의 遺德을 追慕하는 바이다.
兄弟여, 姉妹여, 後世를 繼承할 靑少年들이여, 公의 遺骸를 吉地에 安葬하고 莊嚴한 墓碑를 建立한 誠意를 銘心하라.
그리고 公이 보여주신 崇高한 精神과 不屈의 實踐力을 繼承하여 國土統一을 이룩함으로써 國威를 萬邦에 宣揚하는 때에야 비로소 公의 榮光에 眞實로 慰安을 드리는 所以가 될 것이다. 以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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