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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위(白岩)마을 입구 서쪽에 자리 잡은 이 남근석(男根石)은 백암(白岩마을) 열두 당산(十二 堂山)의 하나이며 전에 남근석당산(男根石堂山) 앞에는 여근목(女根木)이 있었다고 한다.
화강석제(花崗石製)의 네모난 기단(基壇) 1m 가량의 위에 원통형(圓筒形)의 남근형태(男根形態)를 조각(彫刻)한 이 신앙물(信仰物)은 300년 전 이 마을의 자선사업가(慈善事業가) 인 모은(慕隱: 또는 蒼陰) 박잉걸(朴仍傑: 1676~ )에 의하여 부락의 번영(繁榮)과 도적(盜賊)을 방지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여러 형태로 된 24개의 당산(堂山)은 오랜 세월 동안 없어 졌고 몇 개의 당산(堂山)만이 마을 주위에 남아 있다.
남근석(男根石) 당산(堂山)에는 음력(陰曆) 정월(正月) 초사흘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 년(豊年)과 제액(除厄)을 위하여 당산제(堂山祭)를 올리며 자손이 없는 여인(女人)이 공 (功)을 드리면 생남(生男)의 효험(效驗)이 있다고 한다.
남근(男根)의 높이는 1.35m이고 인접하여 세워진 동네 입구 동서의 1.92m 높이인 미륵 (彌勒) 형태의 장성당산(堂山)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문신(守門神)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원래 24방위(方位)에 맞추어 세운 24개의 당산(堂山)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 게 많은 수의 당산을 세우게 된 유래는 기록에는 찾을 수 없으나, 촌노(村老)들의 설화(說話)에 의하면 약 300년 전에 마을에 살던 모은 박잉걸(慕隱 朴仍傑)이 세웠다 하는데 이 사 람은 1676년인 숙종(肅宗: 丙辰) 2년 때 사람으로 백암리(白岩里)에서 태어 났는데 효행(孝行)으로 명정(命旌)이 내려 벼슬을 받았으나 말년에 자선사업을 많이 해서 유명하다.
구절치(九節峙와: 七寶에서 山內面)와 굴치(屈峙)의 험한 곳에 길을 만들었고 태인(泰仁) 에 대각교(大脚橋: 지금 居山橋))를 가설 하고 산속에 석탄사(石灘寺)를 다시 짓기(重建)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