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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향정내 고비군(태인 태창리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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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향정내 고비군(태인 태창리 비석군)

  • 시대조선 - 1910년
  • 소재지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1

상세정보

피향정(披香亭) 안에 파손된 3기를 포함하여 모두 19기이다. 피향정 경내에 있는 16기 石碑 가운데 이서구(李書九) 홍범식(洪範植) 이외의 비석은 1970년경에 부근에서 옮겨 세운 것이다.
홍범식 군수(洪範植郡守) 선정비(善政碑)
1910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군수 홍후범식(郡守 洪侯範植)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라 새겼고 뒷면에는「여학선치(與學善治) 향인입비송덕(鄕人立碑頌德) 경술입절(庚戌立節)」이라 했다. 작은 돌거북 위에 비신(碑身)은 높이 1.51m, 폭은 0.53m, 두께는 0.22m이다.
1910년 당시는 금산군수(錦山郡守)로 있었는데 일제(日帝)가 강점(强占)하자 자결하였다. 그 뒤에 세운 것이다. 한말(韓末) 태인현감(泰仁縣監)을 지냈다.
이서구(李書九) 순찰사(巡察使) 불망비(不忘碑)
1822년(純祖 22)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 「순찰사 이공서구(巡察使 李公書九)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뒷면에 「도광 2년 임오 10월 18일입(道光 二年 壬午十月十八日立) 별유사추방욱 정용주(別有司 秋芳郁 鄭龍周)」라 새겼다. 이서구는 1793년(正祖 17)에 관찰사(觀察使)로 도임하고 정조 19년 4월에 떠났다. 1820년(純祖 20年) 10월에 다시 도임하여 순조 22년 3월에 떠났다. 이해가 도광 2년 임오이다.
기대석(基台石) 위에 관석(冠石)이 있는 비신(碑身)은 높이 64㎝, 폭 57㎝, 두께 20㎝이다.
라수 현감 선정비(羅袖 縣監 善政碑)
현종(顯宗) 때로 알려져 있으나 효종 - 현종때로 추정된다. 현감 라수는 인조(仁祖) 27년 - 효종 4년(1649∼1653)까지 재임하였다.
비석높이 1.16m, 폭은 0.59m, 두께는 1.18m이다.
김수일 현감(金壽一 縣監) 선정비(善政碑)
연대는 미상이나 숙종(肅宗) 때로 추정된다. 비신(碑身)의 웃 부분이 끊어져 「현감김(縣監金)」이 없는체 「○○○후수일(候壽一) 청덕강명휼민 선정비(淸德剛明恤民善政碑)」라 새겨져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김수일이 아닌가 한다. 현감 김수일은 현종(顯宗) 10∼12년(1670∼1672) 사이에 재임하였다. 현지(縣誌)에 「갈성진민(竭誠賑民) 포승계입비(褒陞階立碑)」라 보인다.
비신(碑身)의 현재 높이는 124m, 폭 0.73m, 두께 0.18m이다.
송지렴 현감(宋之濂 縣監) 선정비(善政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숙종(肅宗) 때로 추정한다. 비면(碑面)이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려우나 현감 송지렴은 재임기간이 현종(顯宗) 1년(1660) 3월에서 7월까지이다.
비면(碑面)에 「현감 송후지렴(縣監 宋侯之濂) 청백선정비(淸白善政碑)라 새겨져 있으며 높이 1.73㎝, 폭 0.73㎝, 듀께 0.18㎝이다.
홍계적 현감(洪계啓迪縣監) 불망비(不忘碑)
숙종(肅宗)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비면(碑面)에 「현감 홍후계적(縣監 洪侯啓迪)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고 새기고 좌우에 「선△일주(善△一周)」 「태품중신△유천춘(太 重新△流千春)」이라 하였다. 홍게적 현감은 숙종(肅宗) 42년(1716) 정월에 부임했다가 바로 교리(敎理)로 전임되었다.
높이 158㎝, 폭 50㎝, 두께 17㎝
김이회 현감(金履會縣監) 불망비(不忘碑)
김이회는 정조(正祖)말 - 순조초(純祖初) 사람으로 이 비(碑)는 순조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비면(碑面)에 「현감 김후이회(縣監 金侯履會)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 새겼다. 현감 김이회는 정조(正祖) 16년(1816) 태인동현(泰仁東軒)을 중건(重建)하였다. 높이 0.92m, 폭 0.1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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