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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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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유산

모충사(慕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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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慕忠祠)

  • 지정일2005년 11월 9일
  • 소재지정읍시 옹동면 대칠길 20-5(산성리 산97)

상세정보

1666년(현종7)에 창건하여 백광언(白光彦)을 향사하고 1702년(숙정28)에 전덕린(全德麟), 송지순(宋之順), 이지시(李之詩), 이지례(李之禮), 송인신(宋寅臣)을 추배하고 1806년(순조6)에 권극평(權克平), 1842년(헌종7)에 최응립(崔應立), 백함생(白咸生)을 추배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백광언의 출생지인 도동(옹동면 칠석리)에 사우를 세웠다. 1868년(고종5) 정부의 영에 의해 헐렸으나 1924년에 유림들의 발의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권영모가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다 일제의 반대로 중단됐다. 1978년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정부보조금과 도, 군의 재정지원으로 1980년에 사우 1동 내외 3칸 규모로 복설하였다. 1998년에 강단인 학윤당(學倫堂)을 추가로 지었다. 그 후 사당과 내삼문의 지붕이 새는 등의 문제가 있어 201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사당은 전면을 개방한 전퇴개방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사인물(享祀人物)
백광언(白光彦, 1554~1592) : 관(貫)은 수원(水原), 자(字)는 명선(明善).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고성현령(固城縣令)과 북청판관(北淸判官)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侊)의 선봉장으로 용인 싸움에서 순절하니 병조판서를 추중하고 충민(忠愍)의 시호(諡號)가 내렸다.
전덕린(全德麟, ?~1592) : 관은 천안(天安), 자는 상경(祥卿). 판관(判官)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 백광언과 같이 창의하여 용인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송지순(宋之順, ?~1592) : 관은 여산(礪山), 자는 정숙(正淑). 임진왜란 때 창의하니 군자감정(軍資監正)을 특별히 제수하고, 사후에 정민(貞愍)의 시호를 내렸다.
이지시(李之詩, ?~1592) : 관은 단양(丹陽), 자는 영이(詠而), 호는 송암(松庵), 호군으로 임진왜란 때 용인 개성산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경의(景毅)의 시호가 내렸다.
이지례(李之禮, ?~1592) : 관은 단양, 이지시의 동생. 호군으로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싸우다 순절하니 장민(莊愍)의 시호를 내렸다.
송인신(宋寅臣, 1576~1595) : 관은 여산, 호는 은암(隱庵), 지순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창의했다가 군중(軍中)에서 졸(卒)했다.
권극평(權克平, ?~1594) : 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칠송(漆松)이다.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보공장군(保功將軍)에 서훈되고,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오충도제부도사(伍衝都提府都事)에 이르렀다.
백함생(白咸生, 1589~1637) : 백광언의 아들이다. 웅천현감(熊川縣監)으로 이괄(李适)의 난에 전공(戰功)으로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을 받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江華)싸움에서 순절하였다.
최응립(崔應立, 1599~1637) : 관은 삭녕(朔寧), 자는 주극(柱極), 호는 동계(東溪)이다. 이괄의 난에 맞서 백함생과 창의하여 전공으로 진무원종훈을 받았고 병자호란 때 강화싸움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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