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시조를 읊으며 시골에서도 격조 높게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다. 그 당시 여성이 시조하고 풍류를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건만 90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시조음률을 가다듬고 살다가 몇 년 전 세상을 하직하였다. 유란은 45세에 시조에 입문하여 유인성, 박일경, 최형열 등 당시 시조창 명인들에게 사사하고 석암 정경태에게 사사한 후 시조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유란은 시조뿐만 아니라 양금의 고수이기도 하다. 양금은 김제의 나용주 선생에게서 익혔는데, 악보를 보지 않고도 모든 것을 연주하였다 한다. 선생님의 연세 70대 중반에야 전국경창대회에서 갑부1위로 명창반열에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유란은 부안의 이매창 시인의 딸을 자처하며 수십년동안 매창 시인의 기일에 묘소 앞에 술한잔 따라 올리고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이라는 매창 시인의 시 한수를 읊는다고 했다.
말년에는 딸이 사는 정읍 영원면 앵성리로 옮겨와 정읍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사셨다. 양금 洋琴 Yanggeum 양금은 사다리꼴 모양의 오동나무 통에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만든 철사를 얹어 제작한다. 2개의 침괘를 세우고 그 위에 같은 음으로 된 4벌을 1벌로 하여 14벌의 줄을 놓는다. 나무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서양금’, ‘타금’, ‘구라철사금’이라고도 불리며, 음색은 맑고 울림이 없어 다른 악기와 병주나 합주에 잘 어울린다. 양금은 원래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등 중동지방의 악기로 10~12세기에 일어난 십자군 원정 때 서양에 전파되어 중세 이후 유럽 각국에 널리 보급된 악기이다. 이 악기가 동양에 전해진 것은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리치에 의하여 1580년경 중국에 소개된 것이 처음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영조 때 청나라를 왕래 하던 실학자들에 의해서이다. 18세기부터 줄풍류, 가곡, 시조 반주의 풍류악기로 사용되었다. 故임영순선생님 유품(곽상주 기증) - 1913년 부안군 보안면 원상림리에서 출생 - 1929년 경기도 이천 사람 박재근씨와 혼인 - 1958년 집안 일가인 임기하씨 권유로 시조창을 배우기 시작 - 1983년 전국시조창경연대회 명창부에서 장원 - 1984년 부안 여류시인 이매창 묘제를 시작 - 2007년 11월 정읍시 영원면 앵성리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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