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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무왕(百濟 武王) 37년(636년) 영은조사가 현재의 부도전 일대에 50여 동의 대가람을 세우고 영은사라 칭하였다. 고려 숙종 3년(1098년)에는 행안선사(幸安禪師)가 전각당우(殿閣 堂宇)를 새로 중창했고 조선에 와서 이곳 승려들이 작당하여 승적(僧賊)으로 변하여 민가에 행패가 심하여 날로 민심이 소란해지자 중종 34년(1539년)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고 폐찰령을 내려 소각하고 말았다.그 뒤 조선 명종22년(1557년) 희묵대사가 법당 및 요사를 수축하였으며, 선조 30년(1597년) 임진·정유(壬辰·丁酉)의난때 왜군에 의하여 병화로 소실되었는데, 인조 17년(1639년) 부용대사(芙容大師)가 사우(寺宇)를 개축하고 불상을 도금하였다.
그리고 정조3년(1779년) 영운대사(暎雲大師)가 대웅전·시왕전을 개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는데 정조13년(1778년) 법당이 소실되어 고종9년(1878년) 유학(宥鶴), 익진(翼振) 두 선사가 중건하였으며 근래에 와서도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나 6·25전쟁으로 1951년 1월 12일(陰 11월 24일) 대웅전이 그리고 1월 18일(陰 12월 10일)에는 6개 암자가 소실되고, 1957년 주지 야은(野隱)이 요사를 1958년에 대웅전 중건에 착수 하였는바 1959년 주지 다천(茶泉)이 완공했다.1964년에는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가 정화(幀畵)를 조성 봉안했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一柱門), 1975년에 명부전(冥府殿) 1978년에 정혜루(定慧樓)를 복원하고 1978년에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印度)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기도 했다.
성임(成任)의 정혜루기에 의하면 영은사는 고려 말엽 지엄선사(智嚴禪師)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영은사의 개산 연혁을 밝히는데 고증자료의 연구가 더욱 요청된다. 현재 내장사는 1888년(高宗 25년) 간행된 정읍현지에도 영은사(靈隱寺)로 일컬어 왔으나 내장사란 최근 내장산의 산이름을 따서 내장사(內藏寺)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